최정호칼럼-안정된 양국체제의 미래?

입력 2000-11-27 14:47:00

한반도의 '평화'가 곧 남북의 '통일'을 약속해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야할 것인가.

성급한 사람들은 6월의 평양정상회담으로 해서 20세기의 분단시대는 21세기의 통일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말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다만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관계가 이미 얼어붙었던 과거의 분단상태와는 상당히 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고,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통일을 얘기하거나 심지어 꿈꾸어 보기조차도 아직은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우리에겐 더이상 견딜 수 없는 '분단시대'와 아직은 이룰 수 없는 '통일시대' 사이에서 남북관계를 정립할 어떤 중간기의 '잠정정책(interimspolitik)'이 결여돼 있다고 할 것이다. 일종의 정치적 상상력의 결핍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매사를 '있다'와 '없다'의 2분법, 또는 '분단' 아니면 '통일'이라는 흑백논리로 재단하려는 양가적(兩價的) 사고가 우리들의 의식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분단상황이 단순히 땅(국토)만 갈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민족)이 갈라지고 하늘(이념)이 갈라지고 힘(권력)이 갈라지는 다층적 구조를 갖는 것처럼 분단시대도 그 진행에 따라 다(多)단계적인 면모를 전개해 갈 수 있다.

서독의 '동방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는 그가 정권을 장악한 직후 연방의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땅에 존재하는 두 독일(동·서독)의 관계는 아데나워시대와 같은 '상호대립(Gegeneinander)'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양립(Nebeneinander)'의 관계를 승인함으로써 더 나아가 평화적인 '상호공존(Miteinander)'의 관계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양정권을 '북한괴뢰'라고 불렀던 것처럼 아데나워시대의 서독에서도 동독을 가리키는 공식 지칭은 'SBZ(소련점령지역)'이었다. 학술논문에서도 동독을 그들의 공식칭호인 DDR(독일민주공화국)로 적어야할 경우엔 반드시 그 앞에 '소위'란 말을 얹히거나 'DDR'처럼 따옴표로 묶어서 표기하도록 돼 있었다. 브란트시대에 동독을 국가로 승인함으로써 DDR이 '따옴표'나 '소위'에서 해방된 것은 동·서독의 '상호 양립'관계를 입증한 상징이다. 동·서독 정상회담의 교환개최, 서독의 대동독 경제원조로 그뒤 두 독일의 평화적 '공존관계'는 발전해갔다.

한편 정부의 동방정책 추진에 앞서 서독의 공론권에서는 60년대 중반부터 통일이 이뤄질 수 없는 과도기에 있어 동독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었다. 가령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오스트리아식 해결방안― 같은 게르만 민족이지만 오스트리아가 자유로운 국가로 분리독립한 것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동독이 자유로운 국가체제만 갖춘다면 분리하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해결안이다.

혹은 허버트 베너의 유고슬라비아식 해결방안― 동독이 공산주의 체제를 고수한다 하더라도 유고처럼 자유로운 사회체제를 갖게 된다면 별개의 국가로 분리자립하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안이다.

심지어 당시 서독에서 가장 보수적 국가주의자로 알려진 바이에른 지방의 독립정당 기독교사회당(CSU, 독일의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 CDU의 자매정당)의 당수 슈트라우스 전 국방장관조차도 단일 독일민족국가의 재건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서 "두 개로 갈라진 자유로운 독일"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었다.

금년 6월의 평양정상회담에선 남북의 '상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상호양립'관계를 국가원수의 수준에서 입증, 시위했고 그럼으로써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닌 실질적 차원에서 남북의 '상호공존'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을 약속했다. 대단히 좋은 일이요, 역사적인 쾌거이다.

한반도의 2국 체제가 비로소 적대적 관계에서 평화적 관계로 전환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통일시대가 아니라 안정된 2국체제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통일의 먼 후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잠정정책'이 우리에겐 있는 것일까….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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