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추락·농정파탄 살맛 안나는데...

입력 2000-11-22 14:00:00

"또 사정인가"끝없는 경제추락과 농정파탄 때문에 "살맛이 없다"는 분위기가 좍깔린 마당에 정부가 최근의 국정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사정(司正)을 들고 나오자 시정의 밑바닥에선 '정부가 지금 사정할 처지에 있느냐'는 냉소와 비판의 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더욱이 현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공직기강 확립, 지방토호 척결, 난개발 토착비리 척결, 부정부패 척결 및 공직자 사정 등 '사정 시리즈'를 되풀이하면서 대부분 정치적 국면전환용에 그쳤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민들은 이를 '습관성 사정'이라고 피곤해 하고 있으며, 특히 '단골' 사정대상인 공무원, 사회지도층 일각에서는 '부정부패의 옥석조차 구별못하는 정부'라며 강한 반발마저 보이고 있다.

행자부는 22일 전국 16개 시·도 광역자치단체 감사관 회의를 소집, 구체적 지침과 내부감사 강화를 시달했으며, 이미 경산시청에는 21일 감사원 감사관 2명이 내려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복무기강 및 업무전반에 걸쳐 감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은 금명간 상부의 지침을 받아 공직자 금품수수 및 이권 관련 비리, 사회지도층의 토착 비리 및 탈세, 부실기업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 또는 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사정 관계장관 회의 이후 지침이 내려오는 대로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는데 검찰력을 모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사정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것과 관련, 대구변호사회 김준곤 홍보이사는 "공직자 사정은 검찰이 평소 해야할 일인데 갑작스레 길을 막아놓고 음주단속을 하듯 사정을 해서는 과거의 경험으로 봐도 실패한다"고 지적하고 "정치적인 국면전환용으로 사정을 남발하는 것은 얕은수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역작용을 우려했다.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는 21일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금융비리의 검은 손 색출, 검찰총장 탄핵관련 국민 사죄, 청와대 사정 등이 먼저 처리되지 않은 채 부정부패 척결 운운 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국민들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원 김모(35·수성구 만촌동)씨는 "칼을 든 자가 부정부패 투성이인데, 썩은 윗물로 아랫물을 정화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주부 최모(34·동구 방촌동)씨는 "대량실직, 물가급등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엉망인 판에 불쑥 사정을 들고 나오면 국민들만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꼴 아니냐"고 불만을 쏟았다.

기업인들도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는데 또 다시 부실기업 비리를 밝히겠다는 정부 때문에 적잖은 기업인들이 '사정숫자 놀음'에 희생양이 될까봐 움츠러들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달구벌공무원직장협의회 한 관계자는 "금감원 비리 등 사정기관의 부정부패를 모르는 국민들이 없는 상황인데 사정당해야 할 기관에서 사정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합리성·정당성 없는 사정이 계속될 경우 공무원들은 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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