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로 본 조선 양반문화의 실상

입력 2000-11-21 14:04:00

조선시대 양반 문중중 하나인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가 조상의 묘자리를 둘러싸고 200년 이상 싸우면서 양 집안간 통혼도 거의 없었다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사실이다. 1747년부터 시작된 양 집안간 '묘자리 분쟁'은 기나긴 우여곡절을 거쳐 1969년 겨우 화해에 이르지만 그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냈다 하니 눈물 흘린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찌 적지 않았을까?

윤학준씨가 쓴 '양반-양반동네 소동기'(효리 펴냄,544쪽,1만5천원)는 조선시대 성립된 양반의식이 오늘날까지 지속되면서 파생시키는 여러 폐해를 흥미로운 일화에 비추어 지적하고 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하고 양반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경북 안동과 예천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40여년간 생활해오면서 확보한 객관적 시각을 토대로 양반문화를 해부하고 있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들었던 양반에 관한 일화, 일화가 과장되거나 윤색된 배경, 새로이 취재하고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표적 양반 지역인 안동의 풍물, 양반문화와 전통문화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굴레와 부담에 대해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반상의 구분이 없어져가는 과정, 일제 강점기를 비롯 해방 무렵 양반의 후예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공산주의자가 되었는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이와 함께 심.윤 양가의 묘지 분쟁 전말과 함께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성일의 위패 순위와 관련해 빚어진 병산서원파(풍산 유씨)와 호계서원파(의성 김씨)간의 충돌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 앞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책을 발표하자 안동의 양반 후예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비판과 성토에 나섰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다루면서 선조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화와 절대 권위를 부여, 신성불가침의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풍조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냉철한 이성적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유려한 문체로 양반문화의 실상을 흥미롭게 전하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양반문화에 대해 그간 제대로 정곡을 찌르는 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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