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뒷모습

입력 2000-11-21 14:05:00

나눈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왜 그럴까. 뒷모습에서는 그 사람의 삶이 다 잘 읽히기 때문일까. 한없이 고단하고 버거운 삶을 견디느라 기울어진 어깨가 안쓰러워서일까. 한달에 한 두 번정도 만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눈물이 슬몃 가슴에 번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 그리고 나는 안다. 뒷모습이 때로는 이승과 저승처럼 영원한 이별을 예감하는 것이기도 한다는 것을.

지금도 잊히지 않는 뒷모습이 있다. 십오륙년 전쯤인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며칠 가 계셔서 동생과 나 둘이서 집을 지키고 있던 때. 불쑥 작은 외삼촌께서 저녘 무렵에 오셨다. 부산에 계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전화 연락도 왕래도 없으시던 외삼촌. 이 날도 예외없이 술이 얼큰하게 되신 것 같았다. 술로 저녁을 대신 하셨던가. 뒷날 새벽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달라기에 부랴부랴 밥을 지어 드렸다. 드시자마자 너희 엄마에게 갔다와야 된다며 곧장 일어나셨다.

일을 벌이기시는 하나 끝까지 해 내시는 일이 없고 불운이 뒤따라 끝이 안좋았던 외삼촌. 그 끝에 술을 입에 대어 결국 술을 밥처럼 드시며 산다는 분. 가끔씩 외삼촌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서 나는 그 분의 삶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말들 때문이었을까. 내가 그날 새벽의 뒷모습에서 '어떻게 저렇게 한편생을 살 수가 있는가'하는 한심함을 담은 비웃음 비슷한 것을 흘린 것은. 당신의 유일한 누님인 어머니에게 가셔서도 술만 마시다가 뒷날 가셨다고 한다. 그런 뒤 바로 뒷날 외삼촌은 돌아가셨다. 술병 옆에는 약이 있었다던가. 내가 해 드린 밥이 이승에서 드신 마지막 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일을 잊지 못한다. 내가 한 행동을 겉으로야 아무런 죄될 것은 없지만 왜 내가 외삼촌을 그런 마음으로 보냈던가 하고 후회한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외삼촌의 뒷모습이 남아있다. 언제 헤어질 지 누가 알랴. 이런 심정으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겉모습이 초라한 사람일수록 조금 더 오랫동안. 이승을 떠나신 외삼촌을 보내는 심정으로 한없이 연민을 담고서, 그렇게 기도하듯.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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