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 최일남, 박완서씨가 나란히 신작을 펴냈다. 최일남씨가 장편 '만년필과 파피루스'이후 4년만에 신작 소설집 '아주 느린 시간'을 문학동네에서 펴냈고, 올해로 등단 30년이자 고희를 맞은 박완서씨는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을 실천문학에서 출간했다. 두 작가는 칠십 줄에 들어섰지만 늘 현역작가의 자리를 지키며 한결같은 보조로 필력의 원숙함과 문학적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우리 소설문학계의 거목들.
최씨의 이번 소설집은 드물게 '노년의 시간'을 정면에서 다룬 8편의 연작을 묶어내 삶과 소설 모두를 아울러 시간의 두께와 깊이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신도시에 사는 다섯 노인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전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표제작 '아주 느린 시간'은 죽음을 애증어린 친구처럼 끼고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통해 노년이 여전히 생생한 삶의 시간임을 전한다. 병원 영안실을 배경으로 죽음이 삶의 대극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현실일 뿐임을 얘기하는 '사진', 소장해온 책들을 처분하려다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옛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은 말했네' 등이 실려 있다.
노년의 지극히 일상적인 삶들을 그려낸 작가는 단아한 문장 사이사이 흐르는 해학과 서정으로 한 시대를 묘파하고 있으며,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단절 그리고 소외의 문제를 진정한 인간의 속도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환시켜내고 있다.
박씨의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독자들은 자본주의라는 그림자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허위와 위선적인 모습이라는 그의 오랜 중심축을 읽을 수 있다. 돈과 결탁한 인간성의 실체, 그 속에서 잉태되는 상처와 고통을 더욱 극단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중심을 잃지 않는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자칭 재벌인 Y건업의 장남 송경호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들의 이기적인 행태와 돈을 둘러싼 암투, 죽음의 소외와 맞물려 남아선호라는 탄생의 불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겹쳐진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이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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