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무엇이 정답을 강요하는가?

입력 2000-11-10 14:30:00

본격적인 대학입시 철을 알리는 200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닷새뒤로 다가왔다. 좋든 싫든 간에 입시는 한번의 선택으로 학생 자신의 미래를 거의 영속적으로 판가름 짓는 우리사회의 공적인 장치이다. 그것은 출신과 학벌 제조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한번 찍힌 바 코드는 업(業)처럼 죽은 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유전된다. 해마다 온 국민이 긴장과 수면부족의 스트레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지금 입시는 성인 통과의례가 아니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가는 능력과 자격을 갖춰주기보다는 모범답안의 암기기계로 만들고 있다. 이제 입시는 진정한 성인 통과의례를 담당해야 한다. 꿈 많은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기성세대들이 기대에 찬 통큰 물음을 던지는 자리여야 한다. 더디고 힘든 과정을 통해서라도 도전적·창의적인 발상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굴·평가되어야 한다. 한 두번의 오답일지라도 실패한 과정으로 무시·배제돼선 안 된다. 모범답안의 집단 히스테리를 벗어날 때 경쟁력 있고 창의적인 아름다운 나사못 하나, 개성있는 그림 한 폭도 만들어진다. 인문적 상상력과 지성의 싹은 여기서 돋는다.

누구나 정답이 있으면 외우게 된다. 사지 혹은 오지선다이건 간에 정답이 있기에 학생들은 비판 없이 관련 교과목의 암기력을 바탕으로 빨리 착오없이 '찍고 고르는' 기술자가 되어간다. 이 기술자들이 깨친 지식은 기성의 교육전문가 집단이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교과서화 한 것이며, 교사는 교실에서 그것을 무슨 임상실험이나 하듯 획일적으로 주입시킨다. 입시는 이처럼 국가주도하에 급속도로 대량 주입된 지식을 단시간에 일제고사로 평가하는 일이다. 또한 정답이 키운 지식의 대부분은 현재 유용한, 실용적인, 현금가치로 환원될 수 있도록 강요된 것이다. 그리기에 정답을 찍고 골라내는 전문업 종사자도 권력을 쥔다. 모범답안을 만드는 산업과 족집게 과외에 돈이 몰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답을 더 많이 빨리 외우기 위해서 학생들은 서로 대화하고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다. 무엇이 왜 어째서 그런가 라고 묻지 않는다. 아닌 것을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한다. 흔한 풍경이지만 학생들의 대부분은 골방이나 교실, 독서실, 그리고 유명강사가 콕콕 찔러 가르치는 대로 외우는 학원에 틀어박혀 있다. 줄을 쫙 그어가며 '잔소리 말고 외워'라는 교육방식에 익숙하다. 함께 모여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하는 원탁형이나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사각형의 테이블이 있는 교실은 드물다. 단상에 교사가 서 있고 학생들은 일제히 흑판을 쳐다보는 일군만민(一君萬民)식의 비민주적 교육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답 없는 물음이 나올 리 없다. 철학적 사고의 훈련은커녕, 습관화되어야 할 윤리·도덕마저 교과서 속에 박제화되어, 몸과 마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사라졌다. 그래서 인정·사정·물정에 대해 왜 라고 묻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며 이해·체득하려 들지 않는다. 도덕불감증·윤리IMF라는 조어가 오늘에만 그칠까. 현행의 논술시험제도는 오지선다형의 교육과 시험이 지니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입시의 한 형식인 논술마저 기성의 입시틀 속에서 하나의 과목으로 왜곡·변질되었다. 토론문화는 거세되고 모범답안, 예상답안만을 만들어 외우게 하는 논술과외산업만이 우후죽순 양산되었다.

정답이 있는 곳에 암기가 있고, 암기가 있는 곳에 자율적 사고의 인간은 없다. 자신의 생명과 삶, 그리고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며 '아니오'라고 말할 인간이 사라진 사회는 희망이 없다. 누가, 무엇이 정답을 강요하는가? 교육만이 죄인인가? 지금 우리 교육의 틀을 구겨온 국가와 사회, 그리고 기성세대가 바로 죄인이다. 인재는 결코 사적 소유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여망이어야 한다. 이제 입시의 틀도 아주 확 바뀔 때다. 인재를 사유화하지 않고 공공적(公共的) 자원으로서 공유하는 교육 시스템의 혁명이 필요하다. 그 환골탈태에 온 국민의 '사적'인 돈이 모여 '공적'으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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