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배려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불쌍하고 한심합니다"
1급 시각장애인 이모(44.대구시 남구 대명동)씨. 그는 8일 밤 9시 대구 중구 남일동 중앙시네마극장 앞에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뼈저리게 곱씹어야 했다.
대학 교직원인 그는 이날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갖고 650번 시내버스를 타러 가던 길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인도에 낸 점자블록을 따라 조심스레 걸어가던 그는 불법 주차 승용차에 왼쪽 무릎을 심하게 부딪혔다. 하마터면 길바닥에 쓰러질뻔 했다. 한동안 놀란 가슴과 통증을 달랜 뒤 그냥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점자블록을 통째로 점령하고 있는 승용차에게 또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112로 경찰에 승용차의 견인을 부탁했다.
한참 뒤 현장에 나온 경찰관은 차량 번호를 조회, 차주인(21살 여자)을 찾아냈지만 현장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견인사업소도 영업이 끝나 승용차를 마음대로 치울 수도 없는 상황이 한시간 가량 지났다. 마침내 경찰관은 "불법주차 딱지를 붙이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눈치였다.
밤 11시가 가까와 귀가한 이씨는 "운전자와 경찰관의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데 장애인들은 도대체 무얼 믿고 살아야 하나"면서 "많은 국가 예산을 투자해 점자블록을 설치해놓았지만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사실 이씨의 다리는 멍 투성이다. 점자블록 위에 세워놓은 차량이나 수레, 차량 진입 방지석에 부딪혀 다치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일 남문시장 앞 점자블록을 따라가다 불법주차한 대형 트럭에 부딪혔고, 지난 6일 만경관앞에서는 인도위의 주차 차량을 피하다 점자보도블럭을 찾지 못해 횡단보도를 건너지도 못했다. 그 뿐 아니다. 정상인들이 시각장애인을 배려해 점자블록인도를 피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 부닥치는 경우도 예사다.
이씨는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블록을 따라가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할 정도로 시내 나들이는 고행길이다"며 "제발 시각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정상인들이 길을 열어주고 당국도 철저하게 관리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한편 지난 98년부터 법령으로 의무화한 횡단보도 진입의 점자블록 설치는 대구시내에 현재 3천670개의 실적을 나타내고 있으며, 시내 중심지인 중구의 인도는 90% 가량이 점자블록을 깔고 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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