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운문사에 다녀왔다.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사찰을 자주 찾는 이유는 절집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나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못지 않게 사찰 문화재를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감상 비중이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지정문화재에 치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로 인해 여타 비지정문화재는 아예 무시하고 지정문화재라 하더라도 그 등급에 따라 가치의 우열을 쉽게 결정하고 만다. 이는 아마도 오늘날 '이름'중심의 상업주의에 길들여진 버릇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름'이 지배하는 사회-유명 상표가 아니면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맥을 못 춘다. 무슨 대회 그랑프리 수상자가 아니면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은메달 동메달이 아무리 많아도 금메달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결국 이런 풍조가 사적 답사 시에도 따라다니는 것 같다.
운문사의 지정문화재는 보물만도 6, 7점이나 된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가 '이것이다'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보물 317호의 석조여래좌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횟가루 같은 것으로 덧칠을 했는데, 천박하게 회장을 한 여성의 얼굴을 보는 듯하여 부처님 상호다운 기품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보물인데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오래 서성거리게 되니, 결국 이번 답사에도 '이름'의 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만 셈이다.
돌아오는 길-다시 구름재 운문령을 넘는다. 만산을 주황으로 물들인 단풍으로, 흐린 날씨임에도 산 전체가 훤하다.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차를 멈추고 바라본 단풍, 참으로 봄꽃에 못지 않다. 옛 시 구절 그대로다. 그렇다. 비롯 이곳은 단풍산으로서의 국보요 보물급인 내장산도 설악산도 아니지만 봄부터 정성껏 마련한 자신의 고운 마음을 이렇게 소리없이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어쩌면 이름과 실상의 미혹을 벗어날 실마리를 찾을 것도 같다.
이 구름재 넘으면 그 미혹의 안개가 걷힐까? 아무리 미약한 존재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을 날, 이름의 속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날을 기대해 본다.
경주 아화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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