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팬티 한장의 선물

입력 2000-11-03 14:20:00

6년전, 미국 뉴욕의 대학에 교환교수로 있었을 때다. 학교는 뉴욕에 있었지만 집은 한 시간 거리인 뉴저지 북부의 조그마한 도시에 있었다. 낡은 아파트단지에 수백가구의 미국서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침이면 남녀노소 대부분이 직장에 출근하고 텅 빈 아파트 단지 내에는 아내와 이층에 사는 쥬리라는 이름의 미국인 임신부만 남게 됐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어느날 저녁, 쥬리가 사용하지 않는 몇가지 생활용품들을 갖고 내려와 필요하면 쓰라면서 아내의 손에 허술하게 포장된 뭔가를 주더니 귓속말로 얘기하고는 올라갔다. 그녀가 간후 아내는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쥬리가 전에 입다 작아져서 못입게된 팬티라며 이걸 줬어"하며 당황한 손끝으로 포장을 풀었다. 깨끗이 빨아 곱게 접혀있는 하얀 팬티. 우리는 그걸 보는순간 불쾌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깔보는건가? 아니면 불쌍하게 보여서 입었던 팬티를 주나? 어쨌든 그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후 미국생활에 익숙해지고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면서부터 그 선물이 얼마나 귀중했던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 한장의 팬티로 인해서 우리가족은 미국 서민들의 절약하는 생활을 배우게 됐고,이것이 세계 최대의 강국이자 부유국인 미국서민들의 실상이자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미국에서는 이사할 때 무브 세일(move-sale)을 하고, 평상시에도 필요없는 물건들이 모여지면 쓸만한 물건들을 손질해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아주 싸게 파는 개리지 세일(garage-sale) 또는 야드 세일(yald-sale)을 차고나 뜰 같은 데서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어려운 경제여건에서도 사치와 낭비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잘살든 못살든 물건을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들이 흔치 않다. 쓸만한 생활용품도 돈까지 줘가며 버리고, 입을만한 옷들은 아파트 입구 상자에 가득차 있다. 아이들도 오리지날이니 가리지날이니 유명상표만 따진다.

작아서 못입게된 팬티 한 장도 잘 손질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미국인들의 생활정신을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의 경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경일대 사진영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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