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2000 D-7

입력 2000-10-31 14:49:00

◈굳히기냐...뒤집기냐...40년만의 박빙 드라마

미국 대통령 선거가 꼭 7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민주당 고어 후보와 부시 공화당 후보 어느쪽도 압도적으로 앞서지 못하고 있는 혼전 양상. 1960년의 케네디-닉슨 전 이후 40년만의 최대 접전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가 점차 가까워진 뒤 선거전의 관건이 2개 정도로 두드러지고 있다. 하나는 고어가 일부러 숨기려 했던 클린턴이 전면에 나서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고, 또 하나는 플로리다와 펜실베이니아 주가 승부처로 완전히 부상한 것.

◇현재 판세=미국 대선의 특성은 지지율에 상관 없이 선거인단 숫자 확보율로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다. 주(州)별로 개표해 한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통째로 확보하기 때문.

그러나 현재까지도 양 진영 중 어느쪽도 선거인단 수에서 50%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 우열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몇몇 경합주들의 향배가 전체 승패를 가를 것임을 말하는 것. 전체 51개 선거 단위 지역 중에선 30여개에서 지지 윤곽이 드러난 반면, 특히 10여개는 혼조세를 계속 중인 상황이다.

최근 USA투데이, MSNBC, AP통신 등 추정치에 따르면 확보 예상 선거인 수에서 부시가 고어에게 30여명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50% 선을 확보하려면 부시는 추가로 60~100명, 고어는 100~140명 이상을 보태야 한다.

부시는 현재 선거인단 20명 이상의 '대형 주' 6개 중 자신이 주지사로 있는 텍사스(32) 하나 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최대 표밭인 캘리포니아(54)와 뉴욕(33) 선거인단을 고어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플로리다.펜실베이니아.미시간.오하이오.일리노이 등 중형주 서너개를 낚아야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상황.

특히 플로리다(선거인단 25명)와 펜실베이니아가 모두 고어쪽으로 가면 선거는 하나마나가 될 수도 있다. 플로리다의 선거인단 25명은 경합주 중 아이오와(7), 아칸소(6), 루이지애나(9) 등 3개 주를 합친 것보다 많다. MSNBC-로이터는, 플로리다는 고어가 5%p, 펜실베이니아는 부시가 11%p 리드 중인 것으로 조사했다.

경합주 중 두번째로 선거인단이 많은 펜실베이니아(23명)는 고어가 48% 대 43%로 앞서고 있으나, 역시 오차범위 안이다. MSNBC-로이터통신 조사에선 오히려 부시가 7%p 앞선 것으로 나왔었다.

그외 일리노이(21명)는 고어 45% 부시 39%, 오하이오(21명)는 부시 50% 고어 42%, 미시간(18명)은 고어 46% 부시 43%, 뉴저지(15명)는 고어 46% 부시 41%라는 조사 결과가 제시돼 있다. 또 위스콘신(11명)은 부시 49% 고어 40%로, 워싱턴(11명)은 고어 45% 부시 43%, 미네소타(10명)는 부시 41% 고어 38%, 오리건(7명)은 부시 45% 고어 41%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 전세는 모두 오차범위 안에 있고 특히 몇개에서는 조사 주체에 따라 선두가 다르게 나타날 정도.

고어가 이기려면 플로리다.펜실베이니아.미시간을 잡고, 민주당 세가 강한 오리건.워싱턴.위스콘신.아이오와.미네소타.웨스트버지니아 등 6개 주(51명)를 보태면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간 여론조사에서도 대부분 유리했다.

그러나 고어는 최근 오리건.미네소타에서 네이더의 높은 지지율(8∼10%) 때문에 부시에게 밀리고 있고, 나머지 4개 주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고향 테네시주, 클린턴의 고향 아칸소주, 민주당 강세지역 루이지애나 등에서 마저 부시에게 크게 리드 당하고 있다. 여기다 다 잡아 놓은듯 보였던 캘리포니아 표심도 부시가 마구 흔들어 심상찮다.

◇새로운 변수 클린턴=박빙의 승부가 펼쳐지자 클린턴은 "31일부터 고어 지원 유세에 나서겠다"고 5일 전 밝히고 나섰다. 이 전법은 부시도 두려워해 온 것. 많은 국민들은 성추문 등 나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의 업무 능력만은 여전히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

"그 그늘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클린턴의 선거 지원 유세를 거절해 왔던 고어는, 전세가 유리해지지 않자 드디어 모험을 하기로 하고 클린턴의 지원 유세를 요청하고 나섰다. 막판 선거전에 새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고어로서는 아칸소주나 흑인.중남미계 지지가 높은 캘리포니아 등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선 클린턴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이에따라 클린턴은 31일부터 캘리포니아, 아칸소, 루이지애나 등의 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상황이 변하자 부시는 즉각 클린턴과 고어를 나쁜 이미지로 엮어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클린턴의 등장은 고어가 제발로 혼자 설 수 없음을 스스로 확인해 준 일"이라는 것이 폄하의 한 모습이다.

◇양측의 앞으로 전략=부시는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한 플로리다와 펜실베이니아에 정치광고를 집중 투입하면서 틈나는 대로 순회유세를 벌이고 있다. 부시측 공화당 리더십협회는 "녹색당 네이더를 지원하는 것이 고어 표 잠식에 도움 된다"며, 30일엔 워싱턴.오리건.위스콘신에서 네이더가 고어를 공격하는 TV광고를 내 보내기도 했다.

한편으로 부시는 오차범위 안으로 들어온 캘리포니아 공략을 위해 지난 27일부터 대선일까지 350만 달러 규모의 정치광고를 쏟아넣고, 31일까지 이틀간은 현장 유세도 벌이고 있다. 광고는 스페인어로도 나가고 있다. 부시의 이곳 공략은 LA타임스 등 조사에서 지지율 차가 5∼7%p로 좁혀져, 부동층을 흡수하면 승산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 고어가 불안해져 경합주들에 전력을 집중치 못하게 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부시는 새로 돌출한 클린턴 카드에도 맞서 무당파 유권자들의 지지가 높은 매케인 상원의원, 파월 전합참의장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고어 역시 플로리다.펜실베이니아 등에 대한 광고와 유세를 강화했다. 그러면서 캘리포니아.아칸소.루이지애나 등에 대한 클린턴의 지원 유세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는 현재 부시에 근소한 차로 뒤지고 있는데다 녹색당 네이더 후보마저 표를 잠식, 곤혹스런 입장이다.

막판 뒤집기가 절실해지자 투표율이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전통적인 표밭이지만 최근 뚜렷한 이슈가 없어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이 많은 소수 민족과 서민층을 겨냥해 투표 참가를 독려하고 있다. 테네시 등의 텃밭을 다진 뒤 다음주 중 캘리포니아로 가 토크쇼 출연 등으로 마지막 표 지키기에 나설 예정이다.

◇유권자 동향=주 구분 없이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해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 신문이 지난 29일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부시와 고어가 각각 47%와 46%의 지지율로 겨우 겨우 1%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MSNBC와 로이터통신 공동 조사에서도 45% 대 42%로 부시가 3%를 앞섰을 뿐이다.

다만 CNN-USA투데이-갤럽 조사에서는 49% 대 42%, 뉴스위크 조사에서는 49% 대 41%로 각각 부시가 비교적 큰 폭의 우세를 보였다. 그러나 여론조사의 오차 범위를 생각하면 여전히 백중세인 것.

미국의 신문들도 속속 지지 후보를 밝히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 및 뉴욕타임스 신문 등 12개 신문이 고어 지지를 밝혔다. 부시는 워싱턴타임스와 모닝포스트 등 11개 신문의 지지를 얻어 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인구 조사국은 이번 선거의 유권자(18세 이상)는 총 2억600만명이라고 지난 주 발표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52%로 조금 많고, 인종별로는 유색인종이 27%(흑인이 12%)를 차지한다. 동양계.중남미계 유권자가 지난번 선거 보다 16% 늘어난 것도 특징. 나이로는 25~44세 사이가 40%를 차지한다.

그러나 투표율은 50%를 밑돌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번 대선에서도 투표율은 1992년 것 보다 7%나 떨어진 54%에 불과했다. 미국 대선 투표율은 1964년에 69%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유권자들의 태도가 계속 혼조세를 지키자 후보들의 선거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아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도 이번 선거전의 특징이다. 선거자금 모금 활동을 추적하는 독립기관 '리스폰시브 폴리틱스 센터'에 따르면, 부시와 고어는 각각 1억7천640만 달러와 1억2천800만 달러를 모금했다. 여기에 군소정당 후보들이 쏟아붓는 자금까지 합치면 올해 대선에는 총 3억3천5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됐다.

외신종합=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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