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이후 범지구적으로 거세게 불어닥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은 철저하게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개방과 개혁을 표방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빈곤과 억압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겉의 세계화와 속의 세계화가 다르고 낮의 세계화와 밤의 세계화가 다르며 위로부터의 세계화와 아래로부터의 세계화가 다르다.
먼저 그 첫번째 얼굴을 보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개방화를 지향한다. 자본과 기술, 정보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모든 장벽을 철폐한다. 그리고 국가나 노동조합으로부터 기업의 활동이 간섭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탈규제화나 규제완화를 표방한다. 나아가 국영기업이나 공공복리 등에 대한 자본의 처분을 더 자유롭게 하는 유연화를 추구한다. 세계 언론에 보도되는, 그래서 우리 귀에 익숙한 구호는 자유무역과 경제협력, 성장과 번영 등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앞장서서 이끄는 주체는 한 줌의 초국적 기업과 세계금융자본 등이며 IMF, IBRD, WTO 등이 그 전체적 흐름을 관장한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를 위한 다각적 논의를 펼치거나 정보기술 혁신을 주창하면서 지역 블록을 형성하는 흐름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세번째로 열린 아셈도 그 한 예에 불과하다. 각국의 정치경제적 권력자들과 보수적인 학자들이 나라별로 그런 흐름을 자기들의 언어로 확산시킨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만이 새 시대에 살아남는 길이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길이라고….
그러나 그 두번째 얼굴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의 자유를 위해 노동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억압한다. 노동권이 선진국처럼 보장되면 자본의 자유 이동이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공장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지구촌 전체의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자본이 도망갈 공간은 얼마든지 있으며, 또 자본은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책들로 노동을 분열시킨다. 또 각 나라별로 삶의 질 향상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좋은 일 하라고 민초들이 뽑아 놓은 정치가들도 자유무역과 투자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명령 앞에 자주적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노동권과 환경보호, 안전과 건강을 위한 각종 조치들이 규제완화 명목 아래 후퇴하거나 철회된다. 고용안정과 노동의 인간화는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확대가 새로운 경쟁력의 밑거름으로 정당화된다. 그 결과는 실업과 빈곤의 세계화, 경쟁과 분열의 세계화, 20대 80의 사회, 문화의 획일화, 삶의 질과 민주주의의 후퇴 등이다.
바로 이 두 얼굴 사이의 격차와 긴장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저항의 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다. 나라마다 노동조건의 후퇴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있으며 공공복지나 공기업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다. 또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후퇴에 대한 저항도 있고 빈부격차와 사회분열, 인종주의 등에 대한 저항도 생겨난다. 각국 민중의 저항은 물론 시애틀, 프라하, 서울 등에서의 세계 NGO들의 연대 저항이 그 증거다. 따라서 비록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 아무리 대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생명력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각국의 풀뿌리 민중들로부터 진정한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풀뿌리 민중들로부터 진정한 지지를 받는 세계화, 참된 생명력이 있는 세계화, 우리 자신과 이웃, 그리고 후손들에게 책임질 수 있는 세계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 내용은 모두가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나 대체로 세 가지 방향성은 확고히 서야 한다. 첫째, 풀뿌리 민중이 세계화의 동원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각 지역, 각 공동체가 파괴되는 세계화가 아니라 다양하고 활기차게 재창조되는 세계화라야 한다. 셋째, 삶의 질을 하향평준화하는 세계화가 아니라 삶의 질을 상향평준화하는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 그 누가 이러한 민초들의 간절한 소망을 감히 거스를 것인가?
고려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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