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 에스트라다 뇌물 좇다 위기직면

입력 2000-10-19 15:08:00

20여년간의 마르코스 독재를 민중의 힘으로 몰아내고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았던 필리핀이 그 14년만에 다시 정국 위기를 맞고 있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뇌물수수 사건이 불거져 이번달 들어 야당의 반발이 탄핵안 제출로 이어지고 수만명의 시민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9일 한 주지사가 "에스트라다가 '주텡'이라는 불법 도박을 묵인해 주고 도박업자들로부터 2년간 1천2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경제가 최악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폭로가 나오자 전국이 소요에 휘말렸으며, 1986년 마르코스 축출 시민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신 추기경은 지난 11일 에스트라다의 하야를 촉구했고, 아키노 전 대통령도 17일 같은 요구를 내놨다.

야당은 18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직후 1만5천여명의 시민들이 마닐라 금융중심지 마카티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에스트라다는 거듭 사임을 거부하면서 탄핵 청문회에서 자신을 변호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야당의 열세로 탄핵안의 의회 통과가 불가능한데다 탄핵 절차에도 몇달이 필요, 필리핀은 더욱 심각한 정치.사회적 소요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스트라다=배우 출신으로 억압 받는 민중들의 편을 들어 로빈훗 같은 인물로 알려짐으로써 자국민들 사이에서 '에라프'(미더운 친구)라 불려 왔다. 올해 63세.1972년 마닐라 교외의 한 시장 선거에 당선되며 정치를 시작, 1992년에는 대통령 당선자 라모스 보다 높은 지지율로 부통령에 당선됐다. 빈민층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선돼 1998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선거 공약 정책을 수행하고 싶어도 재원이 없어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려 왔으며, 이때문에 뇌물에 유혹당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필리핀의 불행=마르코스를 몰아내고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당선돼 민주정치를 회복했지만 그 역시 과거질서를 되살렸을 뿐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부자들의 천박한 행태는 그대로 살아났고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좌절과 허망함을 느껴야 했다.

뒤이어 라모스가 등장했지만 개혁 비전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재집권을 위해 헌법을 고치려 시도해 문제가 됐었다.

외신종합=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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