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영수회담을 지켜보노라면"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하는 서정주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대구.부산의 장외집회, 막말까지 서슴지않은 여야의 격돌, 국민의 질타를 무시한 정기국회공전 등 숱한 곡절을 겪고 마주한 회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영수가 만났다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믿음직하고 희망적인 것이라면 몰라도 합의내용이나 논의된 내용만 놓고보면 아직 그윽하고 향기로운 국화꽃 같은 것을 피워낸 것같지않다.
여야영수회담의 2개월마다 정례화, 중단된 정책협의회의 재가동, 국회내 남북관계특별위원회설치 등에 합의하고 공적자금추가조성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이외에는 특기할만한 결과가 없다는 점에서 그같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추가조성에서 정부의 너무나 명백한 말바꾸기에대한 대통령사과는 당연한 것이고 국회의 현안관련 특위구성은 국회운영을 맡은 원내총무수준을 넘어 굳이 여야영수회담에서 합의해야할 사안인지 의문이다. 다만 여야영수의 정례적 회담은 대화단절의 여야관계에서 현실적 필요성이 인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합의도 가뜩이나 보스정치의 병폐가 심한 정치풍토에서 정치구조의 하향경직성을 심화시키고 얼마남지않은 대통령선거에 불공정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어 반드시 잘된 합의라고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수회담 성과 의문
사실 이번 여야영수회담에대한 국민의 기대는 이같은 여야대화통로를 마련하는 절차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동안 국회가 열리지못한 사이에 국정현안으로 떠오른 경제문제, 남북문제, 민생문제, 정치문제 등에 대한 이견의 해소와 실질적 합의와 조치를 바랐던 것이다.
이회창 총재측은 이번 회담의 성과에 만족한다는 반응이었지만 엄격히 말한다면 등원명분을 얻은 것 외에 문제해결에 대한 실질적 진전없이 뭐가 만족할만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번 회담의 실질적 성과라면 영수회담에서 여야의 인식차이만 확인한 것이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있었던 여야간의 설왕설래를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영수회담에서 논의된 현안들은 현재 열리고 있는 정기국회나 상설될 정책협의회.남북특위 등에서 주요의제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일말의 해결희망을 걸 수는 있을 것같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거론조차 안된 현안들은 그같은 기대조차 가지기 어렵게 되고보니 더 큰 실망감을 갖지않을 수 없다. 그런 현안 가운데 가장 주요한 것을 지적한다면 지방의 붕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가장 두드러진 국가적 문제는 빈부격차의 심화와 중앙집중과 지방붕괴를 들 수 있다. 그중 지방붕괴의 문제는 경제적으로는 지방이 중앙에 예속돼가는 빈부격차의 또다른 모습이며 정치적.문화적으로는 가장 심각한 국민소외.인간소외의 문제다. 지방자치가 실시된지 5년이 흘렀지만 갈수록 중앙집중은 강화되면서 지방문제는 빈곤과 저개발의 핵심과제로 등장했고 민주화의 사각지대로, 문화의 황폐지대로 심각성을 더해가고있다. 이제 지방문제는 남북문제 못잖게 국가적 현안문제가 된 것이다.
◈야당도 지방이용만
그럼에도 정부 여당은 지방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를 때마다 국토균형발전을 내세운 외면수습용 계획 발표나 알맹이 없는 대통령의 단호한(?)의지 천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5월에도 지방문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건설교통부에 "장관의 진퇴를 걸고 획기적 조치를 취하라"고 했지만 그동안 국토연구원은 3개의 수도권신도시건설을 연구하고 건교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금명간 이를 확정할 예정이란 소식이다. 어떤 명분이든 수도권신도시를 만든다면 지방의 육성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이는 현정부의 지방정책이 겉과 속이 다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 여당이 그렇다면 야당이라도 지방문제를 챙겨야한다.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마저 이번 영수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조차 않은 것은 참으로 야당의 본령을 모르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여당이 추진하는 현안에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정현안에서 빠져있는 것을 먼저 챙겨야한다. 장외투쟁할때는 대구.부산 등 소외된 지방민들의 불만을 이용해 놓고 정작 영수회담에선 지방민의 문제를 거론조차 않은 야당총재도 미듭지않다. 지방민들은 왜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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