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중동 땅은 구약성서에 '가나안'으로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터전. 기원전 12세기쯤 유대인 독립국가가 세워져 '솔로몬 왕국'의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 나라는 외세에 의해 기원전 6세기에 망하고, 유대인들은 식민 치하에 들어 갔다. 그러다 기원 후 135년, 유대인들이 로마 통치에 항의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 뒤 예루살렘에서 쫓겨남으로써 기나긴 유랑의 역사가 시작됐다.
대신 팔레스타인 땅은 이슬람교도들의 손에 들어갔다. 서기 637년 아랍 군대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것. 그 후 1천400여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의 터전이 됐다.
그러나 세계 각지를 떠돌던 유대인들은 1800년대 말부터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로, 또는 상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나 핍박 받던 유대인들은 하나 둘씩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그 땅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과의 충돌은 필연적. 1930년대부터 폭력사태가 빚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생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은 이스라엘 건국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드디어 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 땅의 52% 지역에 유대 국가를 세우고, 나머지 48%에는 아랍 국가를 수립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루살렘은 국제 관리지역으로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48년 5월14일 선포된 이스라엘의 독립은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곳에 살던 90여만명이 집단 탈출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난민의 역사도 시작됐다. 전쟁에서는 중동 국가들이 선제공격했다. 이것이 1차 중동전쟁. 하지만 그 후 3차례 더 진행된 전쟁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영토가 독립 당시보다 오히려 8배까지 늘어났다. 특히 1967년의 제3차 중동전 때는 이스라엘이 6일만에 시나이반도와 요르단강 서안, 골란고원, 동예루살렘 등을 점령해 버렸다.
유엔은 철수를 요구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묵살하고 점령지에 유대인 정착촌을 지었다. 시나이 반도는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따라 이집트에 반환됐으나, 나머지 땅은 아직도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다.
갈등이 계속되자 양측은 평화를 모색, 1993년 '땅과 평화를 교환한다'는 내용의 오슬로협정을 체결, 그 후 지금까지 7년여에 걸쳐 평화협상을 하고 있다.
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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