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경비구역'이 '쉬리'의 흥행기록을 깨고 있다고 한다. 영화 '공동 경비구역'이 아닌 비디오 예술작품 공동경비구역에 잡힌 현실은 모형 서울 거리가 사격연습으로 벌집이 난 모습이었다. 영화든 사진이든 한반도는 20세기 역사적 비극의 살아있는 학습장이다.
개울엔 '쉬리'가 놀고 있고 철새가 날아다니지만 비무장지대는 폭격과 지뢰매복으로 50년이 지나도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곳이다. 세계반전운동의 학습장이 될 요소가 충분하다. ASEM 비정부기구회의에 참가하는 외국인들을 비무장지대로 안내하는 이유는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외국인 친구들의 따뜻한 관심을 바라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 발표를 앞둔 노벨 평화상 후보에 김대중 대통령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분야의 노벨상이 개인의 뛰어난 업적에 대해 상이 수여되는데 비해 평화상은 평화를 위해 노력한 집단 또는 평화가 진정 필요한 곳에 주어지는 경향이 있다. 대인지뢰 금지운동 단체와 대표, 반핵운동단체와 대표가 수상했던 기억이 있다. 인종차별주의를 민주주의로 이긴 만델라 대통령의 수상은 대통령 개인만이 아닌 남아프리카 국민 모두에게 내린 상이다. 남아프리카 국민이 그의 수상을 자기 일처럼 기뻐한 것은 물론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면 그것은 개인에 대한 수상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가 수상하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정신대 할머니, 원폭 피해자, 강제 징용자 등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피해자들이 그대로 한을 안은 채 살고 있다. 일제시대의 전쟁 피해를 시민들이 고발하기 시작한 것조차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2000년 12월 동경에서 각국 여성단체의 관심 아래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법정이 열린다. 6·25 전쟁 피해는 냉전질서의 삼엄한 경계 속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제주도 4·3피해자와 노근리 피해자들이 입을 열어 말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 뿐이랴. 미국 호주 등 다른 나라 고엽제 피해자들이 다 보상을 받을 때조차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뚝심으로 버텼다. 2000년 6월 뉴욕의 유엔 총회장 앞에서 고엽제로 당한 피해를 호소하는 참전용사들은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 가는 20세기의 비극이었던 베트남 전쟁을 다시 상기시켰다.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공한 적도 없으면서 각종 전쟁의 피해를 놀라운 인내심으로 감내한 한민족은 전쟁 피해국을 대표하여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가장 멀다는 극동의 비극이 세계사적 차원으로 조명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뜻 깊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상이 또 다시 당파 싸움의 재료로 쓰인다면 반납하고 싶다. 노벨 평화상이 한 정당의 승리로 평가 절하되면 그것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인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치유제가 되기는커녕 다시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내분의 틈에 인도주의적 전쟁개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1999년 워싱턴 회의를 통해 만들어졌다. 동티모르와 코소보에서 자녀와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울부짖음을 한반도에서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남북 정상회담, 남북이산가족 만남 등에 대해 국민 모두 같이 허심탄회하게 축하할 수 있어야 한다. 당파싸움의 영역과 같이 힘을 합칠 부분을 구분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근대사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아시아의 강제이주 당시 죽은 아이를 놓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한이 밟혀 지하방에서 목숨을 걸고 그린 그림 '레퀴엠'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보다 더 못이 박히는 것은 '레퀴엠'을 그린 신 니콜라이가 보내는 절절한 염원이며 그것은 바로 한반도의 평화인 것이다. 세계가 우리에게 보내는 모처럼의 따뜻한 평화의 손길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남성정치인들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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