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가들이 지난봄 구제역파동의 악몽을 벌써 잊고 있다. 이미 모두 끝난 상황으로 예단하거나 '내 축사는 괜찮겠지'라는 근거없는 확신에 차 있다. 열엔 약하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재발 가능성이 70% 이상이라는 당국의 경고를 경시하고 있는 것이다.
구제역 발병 당시 당국을 찾아 방제약품을 공급해 달라며 아우성치던 모습이 생생한데 지금은 당국에서 거저 주는 방제약 마저 축사 뒷켠에 방치하고 있다. 전 재산을 들여 축산을 한다면서도 재발방지에 노력하는 모습은 발견키 어렵다.
4일 오전 둘러 본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 한 돼지농장. 초입부터 악취가 코를 찔렀다. 허름한 축사 뒷문사이로 돼지분뇨가 흥건히 흘러 나와 주변 공터를 덮고 있다.
내부는 더욱 가관이다. 300여 마리의 돼지가 청소를 않아 덕지덕지 쌓인 배설물을 깔아 뭉개 뒤집어 쓴 탓에 흰색의 '랜드레이스'종이 검은 토종돼지 색 같다.
방제 흔적은 농장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이농장 처럼 소규모 사육농가는 구제역 방제 사각지대다. 방제비도 부담인데다 상대적으로 당국의 관리와 지도 손길도 덜 미치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조성된 양돈단지는 그나마 방제 시늉은 했다. 풍산면 괴정리 양돈단지. 축사를 둘러보러 왔다고 하자 장화와 방제복을 건네주었다.새끼돼지 분만돈사와 비육돈사에는 출입자의 발을 소독하는 소독조가 설치돼 있었고 축사복도에는 직전에 방역을 한 듯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농장입구에는 그 흔한 석회 살포 흔적조차 없었고 외부차량 출입시 사용하는 분사소독기 작동 스위치는 아예 꺼져 있었다. 구색만 갖춰 놓은 것이다.
가축의약품 판매상들에 따르면 구제역 발생후 사태가 진정된 5월까지는 구제역 방제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고가 소독약과 생석회가 날개 돋친듯 팔렸으나 6월 이후에는 매기가 뚝 끊겨 구제역 파동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농가들도 이를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이모(45.안동시 녹전면 사신리)씨는 "구제역이 진정된 마당에 많은 돈을 들여 상시 방역하기도 부담스럽고 그냥 두자니 불안해 안동시가 나눠준 약품으로 최소한의 방제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 양돈농가의 사정은 최악이다. 최근 돼지값이 폭락해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 판에 방역할 여유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당국은 애가 타 허둥대고 있다. 안동시는 지난 7월 돼지 등 구제역 감수성 가축을 사육하는 5천여 농가에 7천500만원을 들여 소독약품을 공급했다.
매월 한 차례 전국 일제소독의 날과 주 한 차례 대규모 집단사육단지 시범방역, 소규모 사육농가 읍·면별 공동방역 등의 프로그램도 펼치고 있다. 그러나 5~6명의 전담직원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고 헛점도 많다.
안동시 관계자는 "각종 무료 예방주사를 직접 접종해 주어도 가축이 스트레스를 받아 성장이 둔화된다며 싫어하는 농가가 즐비한 마당에 구제역방제 지도를 제대로 받아 들이겠냐"고 탄식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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