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먼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꿈 많던 여고 시절'이라서 약속 그 자체가 설레기까지 했다. 영어 교과서에 '20년 후'라는 대목의 글이 있었다. 두 친구가 헤어지면서 20년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약속의 그날, 중절모를 눌러 쓴 중년의 신사가, 시가를 문 채 눈내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바라보며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 친구는 형사로, 또 다른 친구는 그 친구가 잡아야 하는 범인이 되어 만나는 장면이었다.
20년후 이룰 수 있는 꿈같은 약속이 있다는 그 사실에 매료된 내 친구와 나는 우리도 똑같이 만날 약속을 했다. 우리는 "20년은 너무 길어! 10년후, 첫눈 오는 날, 시계탑 밑에서"라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약속을 하고는 그날 이후 매일 같이 서로의 일기를 교환하며 아름답게 살자고 다짐했다. 나는 병약했던 그 친구를 생각하며 의대 공부를 열심히 했고, 힘이 들 때마다 그 친구와의 약속은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꼬박 10년을 기다려 싸락눈이 날리는 날 약속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혹시 그 친구가 사는 곳엔 눈이 오지 않나? 아니면 혹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너무 허전했다.
그래서 허탈한 기분에 한껏 사람의 가슴을 뚫어 주는 기차역의 기적 소리를 들으려 간 적도 있다. 그후 여고 졸업 20주년 행사때 백방으로 친구들을 찾아보니 그 친구는 살아 있었다. 봉화에서 시를 쓰며 꿈같이 살고 있었다.
약속장소에 안 나온 이유는 "아직도 날 기억 해?"였다. 자기는 하루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내가 잊어버리고 안 나오면 감당이 안될 것 같아 그냥 마음속의 영원한 아름다운 약속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한다.
추억은 채색되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지만 순수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짐은 나도 이제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 나오는 서른 여섯 중년을 넘어섰기 때문일까.
꿈을 이루는 사람의 쉽고 재미있는 목표 실현법은 5년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이든 나 자신과의 약속이든 열과 성을 다해 이룰 수 있는 약속을 하면 단물 빠진 껌을 씹듯 무미건조한 생활에도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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