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대입 위장교차지원

입력 2000-10-02 14:28:00

우리 선조들은 베개에 부(富).수(壽).귀(貴).복(福)자를 새겨 배면서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 가운데서도 신분이나 지위가 높음을 뜻하는 귀(貴)를 최고로 쳤다. 출세를 하고 권력을 가지면 돈은 자연히 따라오고, 수명도 길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탓이리라. 이같은 가치관은 오늘의 교육열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대학 진학 열기도 순수한 배움에의 열정보다는 출세 수단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학벌 사회'로 치닫고 있어 학교교육은 성공의 전제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교육에 지나치게 기대를 거는 지도 모른다. 자신감이 없으면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서 밖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학교 성적이나 학벌은 사람을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지침이 되기도 한다.

수험생들이 어려운 자연계열 대신 예체능이나 인문계열 응시로 몰리는 위장(僞裝) 교차지원 열풍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올 입시에서 전국의 101개 대학이 계열에 상관 없이 지원이 가능한 교차지원을 전면 허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고교에서는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이런 편법지원을 권유하고 있으며, 아예 예체능반을 편성해 집중지도한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예체능계 지원자는 지난해에 비해 1만5천명이나 늘어났다. 특히 부산.경기지역은 자연계열과 예체능계열 지원자가 사상 처음 거의 같아지는 기현상마저 빚고 있다. 수능이 도입된 1994년엔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이 각각 45.7%로 균형을 이뤘었다. 하지만 올해는 인문계열이 55.2%인 반면 자연계열은 29.4%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98학년도부터 수험생들에게 전공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도입된 교차지원이 이젠 대학에 쉽게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더구나 특기.적성 지원을 무색케 하면서 '대학에 붙고 보자'는 요행 심리를 조장하고 있는 꼴이다. 이같은 '묻지마 진학'이 선의의 수험생들에게 상대적인 피해를 주고 교육의 본질마저 뒤흔다면 개선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하리라고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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