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단풍 소식은 예년보다 일주일은 더 빨랐다. 그래서인지 그저께 올랐던 주왕산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그 어길 줄 모르는 자연의 법칙 앞에서 과연 우리 인생의 가을은 어떤 빛깔로 물들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우리 눈에 비치는 단풍잎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이제 수분과 영양은 중단되고 땅으로 내려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그렇게 아름다운 빛깔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단풍잎은 반항하거나 거부할 줄을 모르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또 순응(順應)한다.
일찍이 지혜의 거장 노자는 이렇게 갈파했다. '공수신퇴(功遂身退), 천지도야(天之道也)'(도덕경 9장). 자기의 할 일을 완수한 다음에는 조용히 물러서는 것이 하늘 뜻이며 자연의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도 죽음 직전에는 자기의 빛깔을 나타낸다고 한다. 마치 대형 스크린을 들여다 보듯 지난날을 반추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요청하고 유언을 남기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잘 살아온 사람에게는 더없이 밝고 고결한 평화의 빛깔로 드러나지만, 이기와 욕심으로 점철된 삶을 보낸 사람에게는 원망과 두려움의 상징인 어두운 빛깔의 느낌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얼마 전 광폭한 태풍 사오마이의 횡포에도 나뭇잎은 악착같이 나무가지에 달라붙어 자기의 직분과 사명을 완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바람 한점 없는 쾌청한 이 가을날, 땅으로 조용히 한잎 두잎 내려앉고 있는 단풍잎.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노라니 이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일찍이 단풍의 슬기를 터득하신 분이었다. 돌아가시기에 앞서 단 사흘을 앓으셨는데 그 모습이 학처럼 고고해 보였다. 평생을 자식들 위해 자신의 직분에 헌신하며 사시다가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시며 아주 평화로운 모습으로 가셨다. 그 속에는 분명히 단말마의 고통이 따르고 있으련만, 때를 알고 기꺼이 처신할 줄 아는 단풍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오래도록 가슴이 저렸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단풍잎처럼 저렇게 곱고 겸허할 수 있을까.
박옥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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