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사리와 유전공학과 교수의 만남.썩 잘 어울리는 궁합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 토종 삽살개에겐 이 인연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 같은 더 없는 행운으로 작용했다.무엇보다도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삽살개가 제대로의 위상을 찾게됐다. 수천년 동안 어느 누구가 삽살개의 신분을 이처럼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해 주었던가. '민족견'(民族犬)이라면서도 오랜 세월 '똥개 신세'로 천대받았던 개. 그래서 잡스런 피가 섞여들어 멸종 위기에 처했던 개. 하지만 이젠 오롯이 누대로 '종신연금'을 받는 호사속에 번성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여기엔 15년 세월동안 고집스레 삽살개의 순수혈통을 되찾는 일에 매달려온, 삽살개 지킴이 하지홍 교수(경북대 유전공학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삽사리들의 보금자리인 경산시 하양읍 대조리 '대구목장'.
"지난해 정부지원을 받아 새로 신축한 견사(犬飼)와 기존의 견사, 산실(産室) 등에서 성견 500여마리와 강아지 등 600여 마리가 키워지고 있지요"
하 교수가 삽살개와 본격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5년. 당시 삽사리가 8마리에 불과했다는 점에 견주면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사단법인 한국삽살개보존회가 회원들과 청와대, 독도 등지에 분양한 200여 마리까지 포함하면 800여 마리에 이르고 있어 15년만에 그 수가 100배 불어난 셈이다.
미국에서 박테리아를 전공하고 돌아온 유전공학과 교수. 어떤 경로로 삽살개에 주목하게 됐을까. "제가 까까머리 중학생때인 60년대 경북대 농대 수의학과 교수로 계시던 부친(하성진 박사)과 부친의 제자들인 탁연빈, 김화식 교수 등이 삽살개를 연구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며 삽살개를 찾아 30여 마리를 모았어요. 이때 수집된 삽살개 중 일부가 아버님이 경영하던 목장에 남게 됐고 자연 저랑 친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가 미국에 유학가 있을 동안인 70년대의 개발경제 시대는 삽사리를 외면했다. 귀국했을 땐 그간 허술한 사육환경탓에 비루한 몰골로 버려지다시피한 8마리만이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제눈엔 그 삽살개들이 문익점의 붓대롱 속 목화씨앗 세 알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어요"
까까머리 중학생에서 유전공학자로 훌쩍 커 버린 그에게 삽사리는 더 이상 과거의 애완견이 아닌, 우리 토종 유전인자를 순수하게 보존해 나가야 한다는 학자적 '강박감'으로 다가왔다.
이 때부터 삽살개 보존을 위한 그의 외로운 투쟁이 시작됐다. 순수 혈통의 삽살개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누볐다. 어디에 삽살개가 있더라는 소식만 들으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달려갔다. 하지만 가보면 이미 잡종화된 상태거나 "지난 복날 잡아 먹었다"는 등 힘이 쑥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휴일도 없는 나날들. 가족들의 불만도 적지 않았지만 뒷전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4~5년 미친듯이 매달리면서 매년 조금씩 늘어나 89년쯤엔 30여 마리로 불어났다. 생활비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아내에게 맡겨놓고 자신의 월급은 사료값, 방역비 등 삽살개 관리비로 깡그리 쏟아부었다.
'이젠 멸종하지 않겠다'는 자신이 생기면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삽살개의 천연기념물 지정. 삽살개가 늘수록 관리비로 큰 돈이 들어갔고 따라서 체계적인 관리와 혈통유지를 위해서는 천연기념물 지정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돗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는 점에 비춰 명분도 충분했다.
89년 6월부터는 이를 관철하기 위해 문화재 관리국과의 실랑이로 서울에서 살다시피했고 마침내 92년 뜻을 이뤘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삽살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언론의 관심을 끌자 기다렸다는듯 고가의 가짜 삽살개와 애견단체 등에서 발급한 가짜 혈통서들이 나타났다. 삽살개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가 속출하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이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삽살개의 모양을 들어 '과거와 다르다'는 시비를 거는 개업 수의사도 있었다. 또 일반인들에게 삽살개를 일절 내주지 않는 것을 놓고는 개장사로 빗대 '가격을 올리려는 수법'이라는둥 갖은 모욕도 감수해야 했다.
"거의 멸종될뻔한 동물의 품종을 재현내 낸다는 것은 한두해만에 성취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수천년동안 자연 방사된 유전자는 외양만이 아니라 유전자 세탁을 통해 겉과 속이 같아야만 눈 밝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품종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가 지난 15년간 삽살개를 기르면서 단 한마리도 일반인에게 팔지 않았던 이유다. 예술품으로 친다면 아직도 습작품이지 낙관찍어 내놓을 수 있는 완성품이 아니란 생각에서다. 유전자 검증법 같은 엄밀한 과학적 검증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그이기도 하다.
하 교수는 이제 또 다른 일을 도모하고 있다. 삽살개를 중심으로 개 주제의 테마파크 조성이 그것. 경마를 본딴 경견장(競犬場)도 구상중이다. 여기엔 경산시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삽살개를 소재로 한 방송 시나리오와 소설책도 그의 아이디어 제공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런 일들로 수익금이 생기면 '한국 삽살개 육종연구소'라는 문화재단을 만들어 삽살개에 대한 엄정한 혈통관리를 위해 쓸 작정이다.
그의 학자적 의욕은 더 크고 웅대하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선 개를 대상으로 한 게놈 프로젝트가 막 걸음마 단계지요. 충성, 학습능력, 동기 등 정서적 측면에서 개만큼 인간과 비슷한 양상을 띤 실험 대상이 없다는 착안때문이지요. 그런데 세계 어디에도 다른 어떤 개보다 우수한 자질의 순수혈통 삽살개를 600여마리나 보유하고 또 10여년 동안이나 직접 키우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의 야무진 꿈이 또 어떻게 현실화할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 같다.
-글 ·裵洪珞기자 bhr@imaeil.com,사진·金泰亨기자
---역사속의 삽살개
우리의 삽살개는 어떤 개인가. 삽살이, 삽사리, 사자처럼 생겨 사자개로 불려지기도 하는 삽살개의 원래 의미는 '액운 쫓는 개'다. '살(煞)'이란 액운을 말하며 '삽'은 퍼낸다, 없앤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땅 기운이 센 집터의 기운을 누르거나99칸 대갓집의 액막이용으로 삽살개가 활용되기도 했다.
온 몸에 털이 덮여 사자처럼 야성적인 겉모습과 함께 눈이 긴털로 덮여 해학적인 표정을 가진 삽살개는 신라 왕가에서 기르던 특별한 개였다는 점에서 민족의 개이자 우리 영남을 대표한다.
김유신 장군이 군견으로 싸움터에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옛 신라군 연병장이 있던 경주군 산내면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통일신라가 망하면서 민가로 흘러 나온 삽살개는 주로 지리산 동쪽, 반도 남부지역에 번성했다.
낙동강가에 위치한 선산군 해평면 일선교 옆에 300여년전에 세워진 의구총(義狗塚). 한 선비가 술에 취해 돌아오다 강변에서 잠이 들었는데 마침 들불이 일어나자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강물에 몸을 적셔 필사적으로 불을 꺼 주인은 살리지만 자신은 지쳐 죽은 삽살개를 기린 비석이다.
삽살개의 불행은 일제시대에 들어 본격화됐다. 내선일체를 표방하던 일본은 일본 개를 닮은 조선 개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로 진돗개를 택한 뒤 나머지 개는 모두 도살, 그 견피를 일본군인들의 방한복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용맹스럽고 한번 정 주면 쉬 배반하지 않는 한국인의 기질과 외양을 두루 닮은 우리의 삽살개는 빠른 속도로 이 땅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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