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이것은 기차를 타고 종착역인 서울역에 닿을 즈음 경쾌히 흘러나오는 '서울의 찬가' 일부이다과거 우리 기억 속의 서울은 늘 장밋빛이었다. 그 빛깔 속엔 가시도 하나 없었다.
지난날 시골을 버리고 서울로 간다는 내용의 가요를 부르던 심정은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의 '럭키 서울' 바로 그것이었다.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귀하고 높은 서울로 상행선을 타고 '올라가서' 천하고 낮은 지방으로 하행선을 타고 '내려온다'. 서울 표준말에 사투리는 주눅들던 때도 있었다. 정도(定都) 600년을 넘긴 지금, 정치와 경제, 교육과 문화 거의 모든 것은 서울 왕국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
시골(鄕)은 망해도 권세 있고 잘난 분들이 득실거리는 서울(京)은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억울한 사람은 출세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갔다. '마소의 새끼는 시골로,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라는 속담이 그저 생겨 난 것이 아니다.
이처럼 화려했던 서울이 이제 한마디로 난장판이 된 듯하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법과 도덕의 해이, 그리고 총체적 위기 관리 능력 부재는 IMF의 어두운 터널을 완전히 통과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국민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지금의 위기는 이래저래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위기는 서울 탓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말은 바로 하자. 분명 이 위기의 진원지는 서울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중앙정부의 중앙집중 정책이 서울을 비대화하였고, 그 결과 서울은 왕이고 지방은 머슴이 되어왔던 것이다. 서울은 늘 아득히 앞서 달렸고, 지방은 뒤에 처지고 낙오하며 홀대받았다.
도산 지경에 빠진 지방은 더 이상 몰락할 것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지방의 붕괴에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모두 속수무책이다. 종래 구조적으로 지방을 황폐화시키는 형태로 공룡처럼 성장해온 서울은, 대학과 입시가 그렇듯이, 이후로도 빈사상태에 이른 지방을 흡수.편입해 갈 것이다.
지방엔 돈도 힘도 인재도 권력도 학문도 문화예술도 자생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서울은 당근과 채찍, 지원과 통제 모두를 쥐고 있다. 그런 권좌의 서울이 한술 더 떠 정치 판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수시로 지방에다 이런저런 색깔(色)을 칠해대고 그것을 실체화.고정화시켜 정략적으로 이용해왔다.
지방은 서울의 들러리로 권력폭행을 당하지만 정작 자신있게 그것을 고발하고 대변할 사람은 없다. 그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친 서울주의자거나 서울에 직.간접적으로 예속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분명한 것은 서울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는 형태로 지역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건강한 지방이 있을 때 서울의 미래도 있다. 양자는 어차피 공생적 동반자 관계다. 하지만 주변부인 지방은 중심인 서울을 통하지 않고 자립할 길을 찾아야 한다.
지방이 곧바로 세계로, 국제로 소통하고, 또 지방끼리는 화해하며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서울 왕국의 낯선 자-타자였던 지방이 바로 중심이 된다. 중앙정부도 이를 적극 도와야 한다.
지방은 보편적 원리를 존중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고향'과 '향토'를 키우고 사랑하고 지켜가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색깔이 쉽게 서울의 정치판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하는 등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지방은 어쨌거나 약자이다.
강자인 서울에 대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해줄 시민단체나 범 지방연대의 발족도 필요하다. 지금 국가 주도하의 중앙중심 정책이 부당할 때 불복종하거나 이를 견제하고 비판하며 대안들을 제시해주는 건강한 지방이 있는가? 과연 우리에게 서울은 희망인가? 자기본질을 꿰뚫어 보며 고행으로 업을 떠쳐낼 때 지방은 성불(成佛)할 수 있다. 서울만이 진리로 가는 길이 아니다.
영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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