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탈냉전 시대와 어머니의 눈물

입력 2000-09-08 14:54:00

역시 피는 진했고 기억과 그리움은 철의 장막을 녹였다. 한반도에서 탈냉전의 물꼬는 죽음마저 연기시켰던 어머니의 눈물로 터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무기 판매상만 득을 보는데도 우리가 왜 서로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스리랑카의 콜롬보 시내에서 만난 한 우직한 젊은이는 끝없이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나라 걱정이 바로 관광객이 줄어 당장 월부로 산 새 자동차 할부금도 갚지 못하게 되는 내 집 걱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탈 냉전의 새로운 질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는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회의차 홍콩에 다녀오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콩고청년은 영어.불어를 유창하게 하고 6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인텔리였다. 나라가 내전에 휘말리게 되니 개인적인 유능함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일자리와 새로운 컴퓨터 교육의 희망을 안고 내전으로 찌든 고국을 뒤로 하고 희망의 땅 한국에 설렌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콩고의 대학교수와 콜롬보의 택시운전사가 낯설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오키나와에서 만난 미국의 평화운동가 랜디가 지적해 주었다.

그녀는 MIT 재학시절 아래층에 살던 한국인 유학생 집에 걸려 있는 결혼식 사진에 온 가족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6.25 직후에 정치적으로 '파란색'을 옷으로라도 증명함으로써 결혼식이라는 집회를 안심하고 치러낼 수 있었던 당시 한국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MIT에 유학온 가난한 한국 유학생은 지도교수가 논문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바람에 졸업이 늦어져 무진 고생을 했고 드디어 졸업을 해서는 고수익이 보장되는 무기제조회사로 진로를 정했다고 했다. 자신은 평화운동가로 진로를 택하여 서로 가는 길은 다르지만 그래도 그녀의 머리에 있는 그는 가난 속에서도 고물 피아노를 끼고 다녔고 음악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자신과 공통으로 이어질 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랜디의 기억 속에 있는 전후의 폐허를 개인적인 지혜로 극복해낸 한국 젊은이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익은 전형이다. 그 젊은이의 전형은 영화 '박하사탕' 속에서도 재현되어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탈냉전시대라는 개념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탈냉전'시대의 도래가 시민의 노력으로 안겨진 데 비해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에서의 탈냉전에 대한 논의는 아직은 수입된 책 속의 개념에 불과하다.

인권과 평화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개입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간 군비경쟁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 동아시아의 현실이다. 아시아의 잠재적 화약고인 대만과 중국이 있고 분단된 남북한, 그것을 빌미로 미일 안보 협약을 체결하고 평화헌법을 대폭 수정하고 군비증강을 주권회복으로 이해하고 축배를 드는 목소리가 기미가요 제창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압도하는 일본이 있다.

아시아에서 탈냉전 문화의 물꼬를 튼 것은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의 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똑똑한 아들을 이데올로기에 빼앗긴 어머니의 숨죽인 기다림의 눈물은 다른 모든 논쟁을 잠재운다. 고향과 어머니의 품을 찾는 긴 추석 귀향 길은 그것이 남으로 향하건, 북으로 향하건, 판문점 중간으로 향하건 다 같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의 품을 그리는 더 많은 자식들을 더 늦기 전에 하나라도 더 돌려 보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이 탈냉전의 지름 길이 아닐까? 이데올로기 색깔이 다른 자식을 한 품에 안고 어루만질 수 있는 어머니 정신의 사회화가 바로 탈냉전시대로서의 21세기 정신이라는 것을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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