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 영 아니네요",장묘문화 변하는데 시설은 '영점'

입력 2000-09-08 12:01:00

7일 경북 성주의 한 사설 납골당. 무연고 유골 6천여기를 안치하고 있는 이 곳은 양철로 지어진 허술한 가건 물이었다. 실내는 어두컴컴했고 습기로 축축했다. 천장에는 비가 새 얼룩이 이곳저곳 번져있었다.

군위의 사설 납골당. 지하시설인 이곳은 제대로 청소를 않아 먼지가 쌓여있는데다 조명도 없고 환풍기조차 돌아가지 않아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칠곡 대구시립공원 납골당. 5천기의 유골을 안치한 시설이지만 정작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아 성묘 객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유족들이 유골이나 영정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거나 인근 잔디밭에서 분향을 하는 일을 겪고 있다.

최근 전통적 매장중심의 장례문화가 화장 선호로 급격히 변하는 추세에 따라 납골당 이용 역시 급증 하고 있으나 당국의 인식 부족으로 관련 시설과 여건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납골당들은 성묘객들이 다시 찾기 싫다고 할 정도로 시설이 열악, 전국토를 뒤덮고 있는 전 통적 매장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분위기가 흐려질 우려를 낳고 있다. 대구지역의 경우 전체 사망자의 화장율 은 96년 23.6%에서 지난해 29.8%로 크게 늘었으며, 납골당 안장률도 96년 2.9%에서 지난해 7.9%로 급증했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 11개 납골당중 지난해 지은 2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10∼20년이 넘은 낡은 시설속에 각종 편의시설 미비 및 관리소홀 등으로 이용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용자들은 "사설 납골당의 경우 1기당 최하 10만원에서 최고 50만원에 이르는 안치 비용을 받아놓고 유족들이 성묘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전혀 조성해놓지 않는다"며 당국과 업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외국의 가족납골당은 마치 공원에 온 것처럼 쾌적한 환경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납골당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듯 으스스하다"면서 "연고가 없는 유골이 많다지만 이렇게 놓아둘 수 있 느냐"며 관리사무소의 무성의를 탓했다.

이에 대해 사설 납골당 업자들은 "건물을 증축하려해도 혐오시설이라고 주변에서 반대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화장을 택한 유족들이 납골당과 일반 분묘형태를 혼합한 가족납골묘를 이용하려해도 6-12기의 안치 비용이 690만-1천450백만원에 이르러 엄두를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화장유언 남기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구흥사단 최현복 사무처장은 "정부가 앞장서 화장장과 납골당 설치 등에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바른 장묘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납골당.가족납골묘.화장''''

장묘문화 시설의 현주소

장묘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화장, 납골당을 원하는 이들이 눈에 뛸 정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 유교사회의 엄격한 장묘문화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 장기기증 등에 대한 사회적 캠페인이 서서히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에 걸맞는 여건은 미비하기 짝이 없다. 화장장은 혐오시설이란 인식때문에 주민들의 반발에 밀 려 신.증축하기 불가능하고, 납골당은 시설이 낡고 열악해 유골을 선뜻 맡기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부의 자금지원, 지속적인 캠페인 등 정책적 배려가 없으면 건전한 장묘문화의 정착도 쉽지 않음을 보 여준다.

■납골당

'먼지가 쌓이고 비가 새고...'

대구.경북지역 상당수 납골당은 열악한 시설과 환경때문에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성주의 한 납골당은 가건물에 연고없는 6천여기의 유골을 안치하고 있는데 내부에 비가 새는가 하면 환풍시설도 없는 등 관리소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대다수 무연고 유골을 안치하고 있는 군위의 한 납골당도 실내에 먼지가 가득 쌓여있고 조명조차 없어 음산 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 묘지관리소 직원은 "납골당 이용문의가 한달 평균 30여건에 달하지만 실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한번이라도 납골당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이를 이용하지 않을게 당연하다.

또 이용자의 기대욕구를 무시한 획일적인 시설은 물론 이용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이용을 회피하는 이 유가 되고 있다.

가장 시설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대구시립공원묘지 납골당은 기본시설이라 할 수 있는 분향소조차 제대 로 갖추지 않아 이용객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

이들 납골당은 올연말이나 내년중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계획하고 있지만 얼마나 달라질지 미지수다.

더욱이 시립공원묘지 납골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고 있다. 지난 98년 596기였던 유골 이 올해는 8월말 현재 808기로 늘어났다. 현재 5천여기가 안치돼 있는데 하루 100건 가까운 이용신청이 들어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7, 8월쯤 포화상태를 맞게 된다. 시립공원묘지측은 인근에 350평 부지에 1만7천기를 안치할 수 있 는 납골당을 신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승태(36.달성군 현풍면)씨는 "납골에 대한 거리낌이 많았지만 처음에 2만5천원만 내면 별도의 관리비도 없고 성묘하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가족납골묘

최근 들어 납골당과 분묘형태를 합쳐놓은 가족납골묘가 관심을 끌고 있다. 납골당을 꺼리는 이들을 위해 봉분형태의 분묘안에 유골을 6-12기까지 안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가족납골묘의 가격(현대공원묘지 기준)은 4-10평의 경우 690만-1천450만원으로 비싼 편. 공원묘지 관계자는 "일반 분묘가 한 사람을 안치하는데 300-400만원이 드는 것에 비하면 장기적으로 훨씬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23개 시군에 한가족씩을 뽑아 1천2백만원 상당의 가족납골묘 지원비를 제공할 계획이다.

■화장

수성구 고모동에 위치한 대구장의관리소는 한달평균 500-600구의 시신을 화장하고 있다. 화로 9개를 구비한 대형시설이어서 이중 타지역 사람들의 화장율이 50%를 넘어선다.

대구장의관리소 우병수 소장은 "지난 98년 SK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이 화장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면서도 "대구.경북 지역은 아직도 유교적인 성향이 강해 화장율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몇년전만 해도 병사, 사고사, 무연고자 등이 화장을 한 것에 비해 요즘들어 일반인들의 화장이 크게 늘었고, 순직 경찰과 군인의 경우 화장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대구지역은 99년 화장율 29.8%에 불과, 40~50%에 달하는 서울,부산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아직도 '매장'과 '효사상'을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짙어 장묘문화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대구시는 장묘담당 공무원이 1명 밖에 없을 정도로 행정적 지원이 거의 없다. 충남 천안시가 올하반기부터 시신을 화장하는 유족에 대해 1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에 비해 대조적이다.

경북의 화장율은 지난해 17%로 대구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편이다. 포항, 경주, 김천 등 10곳에 화장장이 있지만 혐오시설이란 이유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 신축이나 보수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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