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이창규(군위성당 주임신부)

입력 2000-09-04 14:00:00

새들이 자꾸만 유리창에 부딪쳐서 죽었다. 단 며칠이라도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창을 열고 밖을 한 번 내다보고 헛기침이라도 한 번 하기 마련이다. 휴가를 다녀와서 드르륵 창을 여는데 난간에 새가 한마리 죽어 있었다. 제 깃털을 하나 뽑아 놓고 마치 유언장이라도 쓰듯이 그렇게 누워 있었다. 난 형사처럼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다음 오랫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의 거처에 와서 죽은 그를 위한 배려라 생각하고 다음날 상사꽃이 피던 양지바른 뜰에 묻어주었다.

제 깃털을 베고 누운 그 간절함이 마음속에서 울려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 장사(葬事)를 지내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는데 또 창가에 새가 죽어 있었다. 새들의 주검 앞에서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왜 이들은 자꾸만 삶을 포기하는 건가?오늘은 집을 나서다 하도 햇살이 곱고 해서 부러 마당을 한바퀴 휘 돌았다. 그런데 큰 유리창에 날개를 편 채 부딪친 새의 흔적이 역력하게 보였다. 새들이 왜 죽는지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유리창에 비치는 인빛 해송과 하늘의 환(幻)풍경 때문이었다. 무채색 계절에는 유리창에 비치는 풍경이 새들에게 더 헛갈리는 모양이다. 새들이 유리벽이 실제(實在)의 공간인줄 알았고 실재가 아닌 환(幻)때문에 생기는 가상 공간의 비극이었다.

이제 우리 세상은 점점 가상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가상의 세계와 현실을 혼돈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성서속 바리사이들의 누룩처럼 사이버 공간이 부풀면 부풀수록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는 더 위협적이다. 이미 사이버 세계의 순교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알기 위해서는 모험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지만, 분별할 수 없는 환(幻)의 세계 앞에서 새들의 죽음처럼 우리의 비극도 다가오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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