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논문심사 엉터리 아냐"-재임용탈락교수 재판과정서 논란

입력 2000-08-31 13:22:00

'연구실적 미달'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떨어진 전 서울대 미대 조교수 김민수(金珉秀.39)씨의 재판 과정에서 서울대가 작성한 '연구실적 심사보고서'가 공개돼'서울대가 엉터리 심사를 한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는 김씨의 논문과 저서에 대해 동료 교수들이 98년 6∼8월중 작성한 18편을 최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서울대는 98년 당시 이 보고서를 근거로 '연구실적 미달'이라는 이유로 김씨를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문제는 이 보고서들중 상당수가 막상 김씨의 저서에는 포함돼 있지도 않은 부분을 문제삼았거나 '97년에 시판된 책이 어떻게 21세기 디자인을 논할 수 있느냐', '참고서적 대부분이 외국 서적인 것에 비춰볼 때 사대주의에 기반해있다'는 등 터무니없는 평가를 담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김씨 저서중 97년에 저술 부문 올해의 디자인상을 수상한 「21세기디자인 문화 탐사」라는 책에 대해 모 심사위원은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5장은 제목부터 편견이 엿보인다'며 수,우,미,양,가 중에서 미로 평가했지만막상 이 책에는 5장이 없고 1∼4장으로 구성돼있다.

또 그는 같은 보고서에서 '이 책의 제목인 "21세기 디자인 문화 탐사"는 전혀 21세기의 문화 탐사가 아니다. 이 책은 1997년에 시판된 책으로서 디자이너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보통의 디자인 참고서적 이상의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들은 김씨가 저서나 논문에서 수십권의 구미 이론가의 저서를인용하고 있는 점을 들어 '문화적 사대주의'라고 비판했다.

김씨측 요청으로 이 보고서를 감정한 인하대 미대 성완경(成完慶) 교수는 법원에 낸 감정서에서 "(심사보고서에) 순수히 학술적 판단이라고 보기 어려운 대목들이나 심사의 성실성을 의심케하는 대목, 논리성을 결여한 감정적 폄하들이 다수 포함돼있다"며 "심사위원들의 학술적 자질과 학자적 윤리성 문제를 포함해 심사의 공정성이 크게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성 교수와 또 다른 감정인인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는 "같은 논문에 대해어느 심사위원은 수를 주고 다른 심사위원은 양을 주는 등 최하 점수와 최상 점수사이의 편차가 극단적이어서 심사 평점의 객관성을 가늠할 수 없다"며 "(이 보고서들은) 공문서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효력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감정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특별11부(재판장 우의형·禹義亨부장판사)는 31일 서울대측의평가가 공정한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채 "재임용 탈락은 계약기간 만료에 대한 사실확인에 불과하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 아니다"며 원고 청구각하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서울대측의 심사보고서에 대해 "법원이 이에 대해 평가를 할 경우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언급을 회피했다.

지난 94년부터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조교수로 재직해온 김씨는 98년 재임용 심사과정에서 재임용에 필요한 연구실적물의 4배인 8편의 논문을 냈지만 같은해 8월31일 '연구실적 미달'을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되자 소송을 냈다.

김씨는 판결 직후 "서울대가 교수의 생명이 걸린 재임용 평가를 이런 식으로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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