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중증 장애아들의 대부 룸비니 동산 남도스님

입력 2000-08-30 14:36:00

보림사 스님 남도(39). 머리 깎고 승복 입었지만 얼굴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 좀 전에 내렸던 버스에서 봤던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가? 대구 만촌동 속가집 그대로의 양옥, 장애 아이들의 포근한 이부자리 '룸비니 동산'과 법당을 한데 엎친 가난한 절의 주지.

속세 나이 마흔도 안된 남자 스님. 하지만 아이가 일곱이나 된다. 그들은 모두 중증 장애 아이들. 민국이, 선재, 관도, 민기… 지체장애에다 정신 장애까지 겹친 탓, 아이들은 여덟 아홉살이 돼도 말은커녕 혼자 걷지도 못한다. 그저 누워 있을 뿐.

그것만도 아니다. 며칠 전엔 중풍까지 받아 쐰 90살 할머니도 거뒀다. 사람도 잘 못알아 보는 아이들에게 왕할머니를 주려 그랬을까? 바람처럼 왔다 가는 인생, 기왕에 맺은 인연 마저 끊고 출가했던 행자가 또다시 무슨 인연을 만드는 것일까?지난 1980년대 중반. 아직 속가의 대학생이었던 남도 스님은 소년원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기술도 이야기하고 영어·수학도 가르쳤다. 검정고시로 졸업 자격을 딴 아이들이 적잖이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곧바로 출가. 눈물로 만류하는 부모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산사로 향했다. 인연 깊은 여인도 있었다. 어려웠다. 보름만의 실패. 새벽 예불 드리러 어둠 헤쳐 불당 가는 길. 부처가 아니라 눈물로 매달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아롱거릴 뿐이었다.

이듬해, 스물 일곱. 통도사에서 다시 출가자의 길로 들어섰다. 행자 생활, 강원 생활… 이번엔 진짜였다. 하지만 그 치열한 기본과정을 끝낸 뒤 되찾아 온 것은 의지가지 없는 사람들과의 질긴 인연. 지금부터 3년 전, 강원도 원주의 '소쩍새 마을'로 찾아 들었다. 장애 아이들 돌보기. 그러나 길지 못했다. 이번엔 생사를 넘나드는 엄청난 교통사고.

육신이 상흔에서 해방될 때 쯤이던 작년 8월 대구로 돌아 왔다. '룸비니 동산'을 열었다. 또다시 버려진 장애 아이들. 남도에게 그들은 새로운 인연이 아니라 여태 끊어내지 못한, 앞으로도 끊지 못할 질긴 인연인 모양이었다.

"중은 규율에 꽉 잡힌 생활을 하리라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지만, 그렇잖습니다. 무척 자유롭지요. 떠날 때가 되면 언제든 떠나고, 머물자면 어디서든 머뭅니다". 떠나고 싶을 땐 떠난다고? 그럼 룸비니의 아이들은 어쩌려고? "글쎄, 그게 문제입니다. 아마 아직 '땡중'인가 봅니다". 그가 웃었다.

새벽 4시30분, 새벽 예불로 하루가 시작된다. 그 다음부터는 바쁘고 긴 하루가 이어진다. 이웃도 찾아 다닌다. 아이들을 후원해 줄 선인을 더 찾아내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 후원자가 너무 많아지면 어쩌냐고? 걱정도 팔자. 아이들이 먼저 늘어나도록 돼 있는 것이 인연일 뿐.

스님은 룸비니 동산이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했다. 세상에 소유물이 어디 있느냐고. 좀 더 체계가 잡히고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면, 전문 복지사들에게 맡길 작정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실무적 일은 전문 보모들의 몫. 그러나 스님은 물론, 이 동산의 보모들에게는 얼마든지 베풀고도 남을 사랑에다 또 한가지 더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현실적 지혜. 장애 아이들이 안고 있는 질병에 대한 구체적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아홉살짜리 민국이는 적어도 겉보기엔 멀쩡하다. 그러나 배가 고파도 표현하지 못한다. 울음 조차 제 마음대로 터뜨릴 수 없다. 누군가가 표정을 살펴 음식을 먹여주지 않으면 마냥 굶는다.

다행히 이곳 보모들은 전문가다. 결혼해 본 일도, 아이를 낳아 본 일도 없다. 그러나 장애 아이들을 돌 봐 온 경력은 벌써 10여년씩.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이다.그러나 이들의 힘만으로도 또 모두 다를 이룰 수는 없는 일. 많은 후원자들이 절을 찾아 힘을 보탠다. 군인들까지 나서서 토·일요일에 절 청소를 맡아 준다. 더 많은 시민들은 3천원, 5천원, 1만원을 이체해 멀리서나마 박수를 보탠다. 주변의 병의원·한의원들은 무료로 진료하고, 때때로 약도 지어준다. 다른 시설 아동들과 달라 영양가 높은 음식과 보약까지 챙겨 먹여야 하는 스님에게는 큰 힘이다.

세속 인연이야 버렸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 남도 스님에게는 가슴 미어지는 슬픔도 있다. 오랜 시간 주위를 서성이다 강보에 싼 아이를 내미는 어머니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고뇌차고 서러웠다. 젖은 눈으로 '다시 오마' 굳게 약속하지만, 누구 없이 그것이 마지막. 어떤 사람은 절 문 밖에 아이를 버리고 도망치기도 했다.

그렇게 부모 품을 떠난 아이들은, 또다른 어머니, 또다른 아버지를 만나 룸비니 동산에서 안식을 얻는다. 그래서 지켜보는 어떤 사람들은 "이 아이들이야말로 전생에서 큰 공덕 지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타고 났음에 틀림 없다"기도 한다. 누구는 이 아이들이야 말로 부처라고 했다.

"세상을 살면서 아름다운 면만 보기 원한다면 반쪽만 보고 살겠다는 것과 같아요. 세상에는 장애인도 있고 정상인도 있지요. 함께 섞여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보모 중 한 사람인 김경옥씨의 말.

룸비니 동산의 아이들은 자기 속에서만 살아 간다. 위험도 공포도, 미움도 더러움도 모른다. 바로 옆에서 귀청 떨어져라 울어대는 친구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을 귀여워 하는 후원자가 찾아오면 금세 알아 차리고는 뜻모를 소리 질러대며 반가워 한다.

"그것 참 신기하다" 하고 넘겨 버리면 그만일 터. 하지만 조금만 눈썰미가 있다면 그들이 지금 사랑이 필요해 안쓰럽게 몸부림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이 스님 남도가 지금 거기 있는 이유일까? (룸비니 동산 053-751-4675)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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