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전혜숙(경북약사회장)

입력 2000-08-29 14:01:00

요즈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1·4후퇴 때 어느 부자가 피난을 갔는데, 금 덩어리가 잔뜩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함께 피난을 가던 많은 사람 중에 한 가난한 사람이 보리쌀 한말을 지게에 지고 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허기에 지친 가난한 사람은 보리쌀로 죽을 쑤어 먹었다. 부자도 배가 고팠으나 양식이 없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는 그 가난한 이에게 약간의 금과 보리쌀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바꾸려 하지 않았다. 부자는 하루를 쫄쫄 굶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부자는 금덩이를 몽땅 주고야 보리쌀 반을 건네 받을 수 있었다. 굶주린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끼의 식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60~70년대의 안보와 개발의 이름하에 자행된 독재에 희생을 강요당했던 많은 사람들의 외침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들, 그리고 위대한 조국건설의 역군이라는 미명아래 그들은 당장의 필요보다는 미래가치를 담보 한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일했음을 부인 할 수 없으리라. 그 결과 기적같은 많은 일들을 성취해 내기도 했지만 그 시대의 수혜자였던 재벌과 권력층은 기업의 족벌세습과 부정부패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기업의 성장과 민주화를 위해 제 살 깎기로 견뎌왔던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의 결실은 무관심 속으로 팽개쳐지고 있다.

남북화해의 여건속에 이념의 벽이 무너지고 있는 요즈음, 학교에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직장해고까지 당하면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었다는 한 교사의 처절한 외침을 들었다. 이제껏 죄인아닌 죄인으로 창살없는 감옥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던 그의 절규를 들으면서 절대(絶對) 선(善)의 위험성을 절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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