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폐.파업은 사회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는 '의료 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 의약분업 문제가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한 누적된 의료개혁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 된 것이다.
매일신문은 24일자 1면 머릿기사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의사 파업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하는 감정적인 것은 배제하고, 문제의 본질로 접근해 가는 시간이 이제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醫保는 사회보장 성격
의사 파업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의료제도의 특징을 다시 짚어 보자.
첫째, 우리 정부는 시장경제를 마치 국시 처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시장 만큼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곳도 드물다.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결정돼야 하나,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그것도 획일적으로 결정한다. 이것이 의사의 집단화를 초래하고 정부와의 대결을 부르기도 했다의료제도에는 크게 미국식의 자본주의 형태와 영국식 사회주의 형태가 있다. 우리는 사회보장 성격의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 전국민 의료 보장을 위해 사회주의적 특징을 많이 따왔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제도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복지에 대한 정부 투자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도 경제관료들은 의료재정을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요소로 간주해 의료에 대한 투자를 억제했다. 국가의 부담이나 재정 지원은 가급적 축소하고 그 몫을 민간에게 떠넘겼다. 작년도 GDP 대비 보건의료비는 미국이 13.9%, 독일이 1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6.0%에 불과하다.
외국에선 종합병원은 정부가 관리 운영하고 동네의원은 민간이 담당하는 것이 보편적인 분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국공립 병원은 전체 병원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다수의 국공립 병원이 공사화돼 영리를 추구하게 되기까지 했다.
둘째, 저수가.저급여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1977년에 관행 수가의 절반 수준에서 수가를 정하고 의료보험을 실시하면서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 더욱이 그때 정부는 조만간 수가를 현실화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여년간 지키지 않았다. 지역의보 재정 50% 국고 보조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셋째, 저수가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초래했다. 정부는 저수가로 몰고 갔지만, 결국은 환자 개인들이 그만큼 부담을 져야 하게 된 것이다. 의사와 병원은 원가 보전 즉 생존을 위해서 의료서비스 향상 보다는 한명의 환자라도 더 보는데 치중해야 했으며, 의료보험 망을 피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게 됐고, 고가 진료장비 구입이나 지정진료, 병실료 차액 등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이런 식으로라도 수익을 올려 의료보험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보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약값 마진, 약물 과다 사용 등도 이 범주에 속한다. 현재 의료수가는 현재 국가가 인정했듯 원가의 80%(60%로 보는 시각도 있음) 수준에서 책정돼 있다.
◈비정상적 수익구조
넷째, 이런데도 정부는 수가의 현실화는 없이 관행적으로 용인돼 왔던 그같은 편법에 대해서만 칼을 대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비정상적 수익 구조는 직업적 자부심이 높은 의사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있던 중이었다.
때문에 이번 의사 집단행동은 프랑스혁명 당시 우유값을 시장가격 이하로 묶어 놓았다가 아이들 먹일 우유 마저 시장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던 '로베스피에르식 가격정책'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제시돼 있다.
지금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제부터라도 정당하게 교과서적으로 진료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집단행동이 의약분업의 문제를 넘어서서 의료보험 제도를 포함한 의료제도 전반의 개혁 요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가.사회.시민 합심해야
이제 의료제도를 전부 한번 되돌아 보자.
물론 12년만에 완성된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는 전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 뒤 보완하지 않음으로써 저보험료가 저수가를 낳고 이것이 다시 질낮은 의료서비스를 초래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불만을 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점이다.
지나친 의료수가 획일성은 환자들의 불만도 초래했다. 치료자의 자질 차이나 치료의 질에 관계 없이 진료비가 획일적으로 책정됨으로써, 좀 더 나은 진료를 받으려는 희망자에게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어쩌면 의료기술 전체를 정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의 정도도 심각해진 상태다.
이런 가운데 내년 1월부터는 '포괄수가제'까지 도입된다. 이것은 특정 질병 치료에는 얼마…라는 식으로 진료비를 고정시키는 방식이다. 이것은 현 제도의 문제점을 더욱 깊게 할 위험성도 있다. 백내장을 예로 들자면, 고가의 수정체를 사용하는 것은 힘들어질 것이다. 환자가 원한다고 해도 안될 일이다.
사실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사회주의적인 획일적 체계가 좋을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우리나라에서 본인 부담에 의한 양질의 진료를 완전히 막는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지금, 의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문제 그 자체는 '어차피 국가와 사회,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과제로 국민앞에 던져져 버렸다.
경북대의대 교수.병원관리전공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