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이 사람잡는다"

입력 2000-08-24 14:34:00

도시처럼 대형약국도 없고 동네의원이 외래진료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에서 의료기관과 약국간 의약분업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환자들만 골탕먹고 있다.

영남대 영천병원과 마야정신병원을 제외한 53개의 동네의원이 외래진료의 상당 부분을 떠맡고 있는 영천지역은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 영천시 의사회가 의약품 처방 리스트를 의약분업협력회의에 제출하지 않아 환자들이 의약품 구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네의원들이 대부분 문을 연 지난주부터 안동과 영천 등 도내 중소도시 약국에는 원외처방전으로 약을 구입하려는 환자들이 약을 타기 위해 2~3시간이상 기다리는 등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 19일 안과환자 김모(46·영천시 완산동)씨는 "약을 구하려고 2개 약국을 돌아다녔다. 병원에서 진료대기 2시간, 약국에서 3시간 등 병원과 약국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했다.

박영일(72·안동시 풍천면)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종일 시내 약국을 전전했으나 약을 구하지 못했다"며 정부와 의료기관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영천약사회 관계자는 "아스피린이나 소화제만 해도 같은 성분의 약이 수십종이다. 수십종의 의약품 중 의사 처방전에 따라 일일이 찾아 조제하다보니 시간이 엄청 소요된다. 처방의약품 리스트만 있어도 약때문에 환자들이 이처럼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며 의사들의 비협조를 탓했다.

안동지역은 병의원들의 폐업참여와 일부 의사들의 비협조 등으로 아직 의약분업협력회의조차 구성하지 못해 의약분업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동네약국은 병원으로부터 처방의약품 목록을 건네받지 못해 의료보험연합회의 병원 약품비 청구 목록을 참조해 임의로 처방의약품 목록을 작성, 평균 300~500여종의 다빈도 상용의약품을 구비해 두고 있으나 의사들이 번번이 목록과는 관계없는 희귀약품을 처방하는 바람에 조제를 제대로 못하는 실정.

이 때문에 하루 평균 20~30여명의 병원환자들이 찾고 있으나 처방전대로 조제할 수 있는 경우는 2, 3건에 불과, 환자들이 약국 순례를 하는 고통이 커지고 있다.영천시내 모의원장은 "의약품 재고 누적 사태를 우려,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제대로 갖춰놓지도 않고 의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에 대해 영천시 보건소는 "약사가 2, 3명인 영천시내 4개 약국은 300~400종의 의약품을 구비하고 있지만 나머지 28개 약국은 200종미만의 약만 갖추고 있다. 영천시내 병의원은 55개인 반면 약국은 32개밖에 안돼 약국에서 환자들이 오래 기다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개정 약사법이 발효되는 9월까지 이같은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鄭敬久기자 jkgoo@imaeil.com

徐鍾一기자 jiseo@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