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주.감독기관 함께 놀자

입력 2000-08-23 14:39:00

22일 발표된 워크아웃기업 도덕적해이 실태점검 결과는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일부 부실기업 기업주의 '모럴해저드'가 사실이었으며 그 정도도 심각했음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아울러 채권금융기관과 감독당국은 부실기업주의 비도덕적 행태를 제대로 감시.감독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우며 앞으로 더욱 체계적이고 철저한 감시.감독 체제를 갖춰야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워크아웃기업 98조6천억원 대상채권 가운데 85조6천억원에 대해 이자감면, 출자전환, 신규여신 등 채무조정이 실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다는 점도 채권단과 감독당국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제기지고 있다.

△갖은 유형의 비도덕 행위=일부 워크아웃 기업주들은 자기 소유 부동산을 터무니 없는 가격에 계열사에 떠넘기고 매각대금으로 계열사의 증자에 참여,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는 등 갖은 유형의 비도덕 행위를 저질렀다.

중소기업협동조합 회장을 맡고 있는 박상희 미주그룹 회장은 자기 소유 토지를 미주실업에 팔고 매각대금의 일부를 계열사인 미주철강 증자에 썼다.

진도그룹 김영진 회장과 특수관계인도 개인 부동산을 계열사인 진도종건에 떠넘기면서 통상 매매대금의 10%인 계약금을 70% 가까이 받아 진도종건에 큰 부담을 지웠다.

최근 동아건설 사장 공채에 응모까지 했던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개인재산을 포기, 채권단에 처분을 위임한 다음에 인감을 변경, 소유권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채권단의 직무유기=워크아웃기업과 기업주의 비도덕한 행위를 감시.감독해야 할 채권단의 직무유기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채권금융기관은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경영진 및 실사기관에 대해 1차 기업개선작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채무재조정 18개사 가운데 8개사만이 경영진이 일선에서 퇴진했을 뿐 나머지 10개사 경영진은 채권단의 묵인.방기 아래 소유권 또는 경영권을 놓지 않고 있다.

또 채권단은 사외이사 등 경영진 추천 과정에서 채권금융기관의 퇴임인사를 추천하는 등 투명성을 잃었고 관리대상 회사의 자금관리도 소홀히 함으로써 거액의 자금이 기업주에 의해 유용되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채권단의 '직무유기'에는 감독당국의 관리 소홀도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조사는 제대로 이뤄졌나=금감원은 검사.조사인력 30여명과 채권금융기관 인력 30여명을 투입, 7월 한 달간 정밀 조사를 벌였다고 설명하면서도 조사의 한계를 시인했다.

금감원 조재호 신용감독국장은 "감독원이 기업에 대한 직접조사권을 갖지 못해 채권단과 해당 기업간 관리계약에 입각한 서면조사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고 밝혔다.

악덕 부실기업주를 직접 면담조사한다거나 자술서를 받는 등 효율적인 조사는 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실태점검 결과를 발표하는 데서도 금감원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스스로 조사의 공정성과 실효성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

금감원은 '시장에 미칠 파장'을 우려, 비도덕 행위 당사자의 실명 공개를 거부하다 비보도를 전제로 겨우 밝혔는데 이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어떠한 조치를 받게 되나=직접조사 및 조치권을 갖지 못한 금감원의 한계에 따라 이번에 비도덕적 행위 사례가 확인된 기업 및 기업주에 대한 조치는 관계기관의 조사 결과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일단 미주, 진도, 신호그룹 계열의 8개사에 대해 이달 안으로 국세청에 명단을 통보, 탈세혐의 등을 집중 조사토록 의뢰하고 국세청의 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기업 및 기업주를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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