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 파업 굽히지 않는 까닭은?

입력 2000-08-23 00:00:00

의료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전공의들이 완강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파업을 밀어붙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교수와 전임의, 학생들이 전공의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 구체적인연대투쟁 움직임을 보이면서 전공의들의 주장이 의료계안에서 힘을 얻고 있어 이들의 요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공의들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지금의 의료환경 아래서 그대로 의약분업이실시되면 의사로서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이 근저에 깔려있다.

이들은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더라도 수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개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개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 설혹 운좋게 개원하더라도 기본적인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선배의사들에게 밀려 경쟁력을 잃고 설 땅을 찾지 못하고 말 것이라고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공의들은 의사의 진료권이 오롯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약사법을 개정, 완전한 형태의 의약분업이 실시되지 않으면 어떠한 불이익을 받더라도 파업을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선배의사들의 경우 지난 20여년간 저수가, 저보장이라는 왜곡된 의료보험제도아래서 '의술'이라는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의식을 저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가마진을 이용, 나름대로 고수익을 누렸지만 분업실시로 약가마진이 사라진 마당에 '양심진료'만으로는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공의들은 정부가 수십년동안 잘못된 의료정책을 펴면서 의사들에게 약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악덕상인' 역할을 강요한데 대해 분개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의사 자존심도, 국민건강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쟁투의 한 관계자는 "의료계 휴폐업사태는 그동안 정부정책에 순응하며 누적될 대로 누적된 의사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며, 이 감정적 분노를 정부나국민이 인내를 갖고 어루만져 주지 않고는 의료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첫단추로 전공의들은 정부가 그동안의 잘못된 의료정책을 솔직히 시인하고의료계가 수긍할 수 있는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라는 대화 전제조건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요구라는 것이다.

나아가 전공의들은 의약분업의 원만한 정착을 위해서는 의사가 교과서적 진료를할 수 있는 토대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약사의 진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임의.대체조제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의사의 의약품 선택권을 제한하는 중앙.지역의약협력위원회 설치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으로 약사법을 개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전문.일반 의약품을 전면 재분류하고 의료보험수가 구조를 개선하며 의료보험 재정안정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도 현재의 의보수가구조로는 의사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단계적인 수가인상을 통해 의료계의 요구를 수용한다는방침이지만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사과요구나 구속자 석방 등은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부는 23일 첫회의가 열린 국무총리 산하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를 통해의료분쟁조정법 제정과 의대정원 동결 및 의학교육 수준 향상방안, 전공의 처우개선등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등 보건의료체제를 전면 개편한다는 방침인 만큼 우선 의료계가 먼저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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