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땅도 사람도 울린 남북의 이별

입력 2000-08-18 12:32:00

남과 북은 다시 울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사흘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이별의 긴여정을 시작했다.

"살아서 또 만날 수 있을까"

"부디 부디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강산이 다섯번이나 변하는 세월의 벽을 넘어 마침내 만나 반세기 한(恨)을 눈물로 씻어내린 남북의 혈육은 다시 북으로, 다시 남으로 갈라섰다.

사흘전 감격적인 재회의 기쁨으로 한없이 울었던 서울과 평양은 생이별의 아픔으로 다시 한번 울어야 했다.

북의 가족들을 떠나 보낸 17일 아침 남의 가족들은 그 그리운 얼굴을 가슴에 새기고, 행여 손이라도 한번 더 잡을수 있을세라 워커힐 호텔과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이날 아침 7시40분,워커힐 호텔앞 광장은 마지막 30분 만남의 시간동안 기약없는 이별앞에 흐느끼는 이산가족들의 통곡으로 일렁였다.

북한의 국어학자 류열(82)씨의 딸 인자(59)씨는 그토록 그리워 했던 아버지를 다시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에 아버지의 품에서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며 흐느꼈다. 북받치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버스에 오른 아버지 류씨는 버스 차창에 기대어하염없이 우는 딸에 작별의 손짓을 하다 끝내 안경너머로 솟구쳐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하룻밤이라도 어머니랑 함께 자는게 소원'이라던 평양대 무용과 교수인 김옥배(68)씨는 "꼭 다시 올테니 살아 기다리세요"라고 어머니 홍길순(88)씨 품에 안겨 울었고, 미수(米壽)의 어머니는 "아이고, 아이고..." 통곡을 하며 "내가 살아서 너를다시 볼수 있겠니"라며 울부짖었다.

김일성대학 교수인 조주경(68)씨는 어머니 신재순(88)씨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울지마세요.웃으며 헤어져요"라며 눈물을 꾹 참았고, 노모는 "또 언제오나. 손자.손녀 보고 죽을거야.너도 건강하게 살아라"며 아들앞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애써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북측 임재혁(66)씨는 치매를 앓아 휠체어에 의지한 아버지 임휘경(90)씨에게 "이제 가요. 아버지, 다시 올께요"라고 절규하며 작별의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 임씨는 멍한 눈으로 말없이 큰절을 올리는 아들을 바라봤고, 아들이 탄 차가 길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응시했다.

50년만에 처음 아버지를 목놓아 불렀던 북한 영화촬영감독 하경(74))씨의 아들문기(55)씨는 "아버지"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아버지를 등에 업고 광장을 돌았다. 하씨 가족들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눈물속에함께 불렀다.

북측 김치효(68)씨는 어린 손녀딸의 볼이 닳아져라 얼굴을 부벼댔고 리춘명(70)씨는 '이춘명 할아버지 건강하고 오래사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손자.손녀들을 발견하곤 눈물을 훔쳤다.

대다수 북측 이산가족들은 마지막 짧은 상봉의 시간을 갖고 버스에 탄 뒤에도 차창 너머 남의 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눈물을 닦아가며 남은 가족들이 시야에서 사라질때 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혈육을 다시 떠나보낸 남의 가족들은 오전 8시10분 버스가 출발하고 난뒤에도허탈한 심경과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한참동안이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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