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은 서울과 평양. 우리는 한나라 한겨레

입력 2000-08-16 12:05:00

해방 55주년을 맞은 15일 꿈에도 그리워하던 가족을 찾은 남북의 이산가족들은남과 북이 함께 빛을 되찾았던 해방의 그날과 다를 게 없다.

눈부신 남북의 하늘은 더 이상 둘이 아니었다. 북의 고려항공은 마치 서울-평양의 정기항로를 운항하는 듯 했다.

평양의 고려항공, 고려호텔 모두 코리아 항공, 코리아 호텔이 아니던가.

해방을 맞은 이날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온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이날의 만남으로 더 이상 둘로 갈라진 이산가족이 아니었다.

서울과 평양은 비로소 한겨레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었다.

지난 6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그리고 불과 며칠 전엔 남쪽 언론사 대표단이오간 뒤인지라 평양은 가족을 만나러 온 남쪽 이산가족 방문단 151명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평안남도 안주군(현재 안주시)이 고향으로 50년만에 누나 봉래(72)씨와 여동생학실(64)씨를 만난 김장수(68.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씨는 "3년 뒤에 꼭 돌아오겠다고 홀어머니한테 약속해 놓고 이를 못지킨 게 그야말로 천추의 한이 되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5대 독자였으나 6.25전쟁 당시 18세의 나이로 인민군에 징집돼 3개월만에 전쟁포로로 잡혀 거제도수용소 등지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53년 전쟁포로 교환때 결국 반공포로로 남쪽에 남았다.

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줄 알았다가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백순 노모의 사망소식을 접한 장이윤(71.부산 중구)씨는 두 조카를 만나 한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62년 3월 25일 돌아가셨습니다."

예정보다 50여분 늦게 상봉장에 나타난 장씨는 "3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생존해 계신 줄 잘못 알았다니..."라며 허탈해 했다.

"헤어질 때 4살배기였던 조카 준석씨가 이제는 50을 넘겨 환갑을 바라본다는 말에 장씨는 "네가 벌써 52살이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씨는 "비록 어머니는 아니지만 50년만에 혈육을 만날 수 있었다"며 "지난 아픈 세월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남쪽 이산가족 100명은 오후 3시쯤 숙박장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해 냉면으로 뒤늦게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고려호텔 2층과 3층에 마련된 상봉장에서 오후 5시부터2시간여 동안 55년의 회한을 풀어내는 만남을 시작했다.

관절염으로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들어선 김금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사촌자매 금도(72)씨와 금년(69)씨를 만나 "허리가 너무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만나러 왔다"고 말을 뗐다.

사촌들은 "이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눈시울을글썽였다.

그러나 김금자씨는 그렇게 만나고 싶어했던 오빠 어후(73)씨가 고혈압으로 나오지 못하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건강문제로 방북이 어렵지 않나 해서 조마조마했던 김상현(67.서울 송파구마천2동)씨는 한눈에 누님 상월(70)씨를 알아보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4후퇴 때 일주일만 피난가 있으면 무사하다고 해서 떠났는데 이제 돌아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누나 말을 듣지 않았을텐데..."라며 김씨는 어리광처럼 원망 아닌 원망을 했다.

최경길(79.경기 평택시 팽성읍)씨의 북쪽 아내 송옥순(75)씨는 최씨가 손을 잡자 흐느끼다가 끝내 대성통곡했다.

송씨는 최씨가 딸 의관(55)씨는 왜 안나왔느냐고 묻자 "머리가 아프고 병치레하느라 못나왔다"고 말했다.

황해 사리원 출신의 양영애(70.강원 동해시 부곡동)씨는 남동생 후열(54)씨를만나자마자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신지를 아느냐, 평생 너를 가슴에 묻고 한을 안고돌아가셨다"며 땅바닥에 쓰러졌다가 주위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기도 했다.

남쪽 방문자 가운데 최고령 가운데 한 사람인 김정호(91.서울 강서구 가양동)씨는 1.4후퇴 때 눈보라 때문에 두고 와 평생 한이 됐던 외동아들 덕순(60)씨를 만났다.

덕순씨는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패인 초로의 나이였다.

또 개성시 출신의 이윤용(82.경기 성남시 분당구)씨는 처남 김홍규(63)씨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 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홍규씨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다니 기쁘다"며 감격해 했다.

이날 평양에서의 단체 상봉이 예정보다 1시간 늦어짐에 따라 당초 오후 6시로예정됐던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위원장 주최의 인민문화궁전 만찬도 8시로 순연됐다.

남쪽 이산가족들은 평양방문 이틀째인 16일에는 비공개 개별상봉을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고려호텔 숙소에서 할 예정이다.

남북은 이 비공개 개별상봉에 대해서는 아무 제한없이 취재를 허용하기로 했으나 가족들의 상봉을 최대한 보장해 주기 위해 취재는 5분 내지 10분 정도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산가족들은 마음껏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비공개 상봉을 한 뒤에 16일 점심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단체상봉이 이뤄졌던 고려호텔 2,3층에서 한다.

또 점심식사 뒤엔 당초 알려졌던 교예 관람 대신 배를 타고 대동강을 유람한 뒤종착점에서 놀이시설 등을 둘러보고 승용차와 버스편을 이용해 단군릉을 둘러보는것으로 일정이 조정됐다.

15일 낮 12시 50분께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을 태우고 서울 김포공항을 출발한고려항공 IL-62M기는 예정시간보다 늦은 오후 1시 45분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하자 마중나온 30여명의 환영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순안공항에는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가 젖어있는 부분이 있었고 평양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기도 했다.

이날 평양공항에는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을 비롯, 최윤식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조춘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 허해룡 조선적십자회 사무총장, 허혁필 민족화해협의회 부위원장 등이 마중나왔다.

장충식 단장은 공항 도착 성명을 통해 이번 방문이 이산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을덜어주기 위한 남북 정상의 역사적 결단을 실천하는 첫 사업이라는 점에서 커다란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하고 "남쪽 방문단을 따뜻한 동포의 정으로 맞아주신 북녘동포여러분과 평양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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