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전혜숙(경북도 약사회 회장)

입력 2000-08-15 14:41:00

누군가가 '인생은 전쟁'이라고 했다. 이른 아침,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오늘따라 더욱 그렇게 보인다. 헐레벌떡 뛰어 승용차에 오르는 젊은 남자, 가방을 둘러메고 삼삼오오 몰려가는 등교길 어린이들, 떠나려는 버스를 향해 젖먹은 힘까지 다해 달려가는 청소년들과 직장여성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 속에 무의미한 반복을 거듭하는게 우리네 삶인가? 반복된 나날에 따분함을 느끼면서도 주위의 온갖 문제들 때문에 오늘도 삶의 전쟁터로 향하는 우리는 정녕 언제까지나 일상 속에 매몰되어가야 하는걸까? 그물처럼 서로 얽혀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철저한 수동성(passiveness)의 생활.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된다.

'판단공포증(decidophobia)'라는 말이 있다. 출생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수동성이 자라나면서 부모에 의해 종교와 진로 등이 결정되고, 문화와 사회의 전통에 순응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삶이란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쉬운 길, 많은 사람이 따르는 권위에 자신을 맡겨버린다. 혼자인 것을 두려워한다. 누군가에, 무엇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요즘 '벤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글자그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던져서 일할만한 그 어떤 대상에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살아있음이란 죽은 일상성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주위와의 관계를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유연하게 유지해 가는 삶이 우리를 진정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환경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떠밀려 가는 삶에서 '나의 길'을 선택하는 용기는 우리 삶을 보다 의미있게 만드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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