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부부가 좋아요

입력 2000-08-15 14:47:00

"주말 부부가 좋을 것 같아요. 평일엔 자유롭게 일하고 주말엔 새록새록 부부 사랑을 쌓을 수 있어 좋잖아요".

전문직 여성 박혜란(29·대구 복현동)씨. 대구에서 몇번 선 본 경험이 있는 그녀는 아무래도 타지역에 있는 남성과 결혼해 주말 부부로 지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 욕심이 남다른 그녀에게 주말 부부는 이상적인 결혼 형태. 결혼 후에도 일찍 집에 들어갈 필요없이 미혼시절 처럼 밤낮으로 일에 매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친구 언니 소개로 며칠 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남성을 만나볼 작정이다.

주말 부부는 이제 흔한 일상사가 돼 버렸다. 남편이나 아내의 지방 근무로 직장을 그만 둘지, 아니면 옮길지 고민하던 나이 든 세대의 가치관은 요즘 젊은이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결혼생활 도중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 아예 결혼 처음부터 주말 부부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

주말 부부가 흔해지면서 자녀를 다 키운 50대 이후 부부들 사이에서 시골생활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승강이 하다가 도시와 시골에 떨어져 사는 주말 부부까지 나타나는 등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결혼 석달 된 회사원 김모(35·대구 대명동)씨. 선배 소개로 서울 아가씨를 만나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다. 그는 아내의 직업 특성상 대구로 옮기기는 힘들 것 같다며 앞으로도 계속 주말 부부로 지낼 것이라고 했다. 연애시절 대구·서울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주말마다 얼굴을 마주했던 이들은 결혼 후에도 주말에 한번씩 만나 연애감정을 즐기고 있다.

그는 "혼자 산게 오래 돼 불편한줄 모르겠다"며 주말부부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총각 때 자취방이었던 그의 아파트가 이제 신혼집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밤 늦은 시간 술 취한 총각 후배들의 사랑방으로 인기가 높다. 혼자서 밥도 잘 해먹는 그는 평일 저녁엔 여자 후배들과 함께 연극이나 콘서트 공연을 보는 등 미혼 때와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최현주(35·대구 신당동)씨의 하루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새벽에 일어나 이웃집에 아이 둘을 맡기고 기공 체조를 배우러 간다. 그리곤 출근해 정신없이 일하다 저녁 늦게서야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의 세끼 식사는 돌봐주는 이웃 아주머니가 먹이고, 한번씩 출장 갈 일이 생기면 밤에도 그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잔다.

주말 부부들은 아이가 없을 땐 마냥 자유롭다가도 자녀가 생기고 나면 양육문제라는 가장 큰 걱정거리를 만난다. 최씨 경우 아이 둘을 맡길 데가 없어 한동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지경이었다. 집에 아이 돌볼 사람을 들이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주변 어린이집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아이를 받지는 않으려고 해 고민하다 결국 이웃 아주머니가 맡아 주기로 해 걱정을 덜었다.

최씨와 달리 대부분의 맞벌이 주말 부부들은 자녀 양육을 시댁이나 처가 부모에게 전가시킨다.

젊은 사람들처럼 양육 문제로 고민할 것 없이 50대가 넘어 홀가분하게 주말부부 생활을 즐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남편은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즐기는 반면 부인은 번잡한 도심에서 따로따로 여가생활을 즐기다 주말에 만나는 것.

대구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최창본 교수(영남대)는, "남편은 시골생활을 원하지만 부인은 나이 들어 시골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며 따로 떨어져 사는 50대 이후 주말 부부들이 주위에도 더러 있다"면서, "시골 땅을 사놓고도 부인 눈치를 보느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남성들도 있다"고 전했다.

결혼 정보회사 듀오의 김수상 대구지사장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결혼문화도 달라지고 있다"며, "결혼은 선택, 직업은 필수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고 맞벌이 부부를 원하는 추세에 따라 주말 부부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金英修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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