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 지나서인가. 쓰르라미 소리도 한 풀 꺾이었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 이 여름이 지나면 결실의 계절이다. 그래서 시인은 "며칠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들판의 곡식들이 여물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여름을 지나고 올 가을에는 우리 모두도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면 좀 좋을까. 서로 쳐다보며 "야, 너 참 많이 컸구나"하고 칭찬해줄 수 있게 말이다. 뒷골목 어깨들이 쓰는 비아냥이 아닌, '괄목상대'(刮目相對)해야 하는 '많이 컸구나'를 진정으로 듣고 싶다. 정치가에게서, 기업가에게서, 행정관료에게서, 그리고 이 사회 모든 구성원들에게서 성숙해진 모습을 보고 싶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면서 가능성 보다는 과거 경력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음을 본다. 이번주 대통령의 장·차관급 인사를 두고 여론은 여전히 그 대상자들의 경력에 비중을 두고 평가했다. 상대는 언제나 변하고 있는데 상대를 보는 시각은 여전히 과거 특정 시기에 고착돼 있는 것이다. 물론 변화를 인식시켜주지 못한 대상에게 1차적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임명된 관료들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고착된 평가의 틀을 깨야 하는 책임이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 학창시절 모임에 가보면 성인이 되고난 후에도 성장을 계속해 온 동문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지 않은가.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
지난해 우리는 "이제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화두와 함께 2000년을 맞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당시의 화두는 모름지기 '변화'였다. 때마침 IMF의 관리체제아래에 놓여 있었고 '변화'의 요청은 절실했다. 그리고 2000년. 세상 참으로 많이 변했다. 남북이 화해를 했다. 그만큼 세상이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중에는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는 '극히 일부 세력'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의약분업은 사회적 합의 과정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아직 어린시절,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볼모로 있을때 연나라 태자 단(丹)도 볼모로 잡혀와 있었다. 단은 20여년 뒤 이번엔 진나라 수도 함양에 볼모로 잡혀와 있었다. 그 태자 단이 이젠 황제가 된 옛친구 앞에서 한단에서의 옛 기억을 되살린다. 그때 시황제는 말한다. "기억하고 있지. 그러나 자네는 지금도 인질이지만 나는 천하를 움켜 쥔 대왕이다. 한때 말벗을 했다해서 동격으로 착각하지 마라. 나는 자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 분함을 못이긴 연나라 태자는 후에 자객 형가를 보냈지만 실패했다고 역사는 기록했다.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국회는 여전히 휴업상태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섭단체 구성을 둘러싼 여야간 힘겨루기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과하고 원천무효하라'는 야당의 주장에 여당의 해결책이 답답하다. 김영삼 정권시절 노동법 개정을 앞두고 당시 야당이 국회의장의 사회를 막는 장면이 신문 1면을 장식했을때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 똑 같다. 지난봄 국민들에게 표를 구걸할 때의 국회의원 후보들은 정작 국회의원 배지를 단 뒤엔 성장을 멈춰버린 것인가.
의약분업을 둘러싼 병·의원의 재폐업이 이틀째를 맞았다. 주무장관이 바뀌어도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일부 수가 인상과 사법처리 강행이라는 카드로 의료계를 압박하고 의사들은 '의권수호'를 내세워 반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의사들의 전문직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보상을 일정부분 인정해 왔다면 의약분업으로 표현되는 작금의 변화는 그런 기득권중 일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합의과정이라 말할수도 있다. 물론 정부도 그들이 전문직에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직에의 발전은커녕 현상 유지도 어려워지니 지혜를 모을 일이다. 나누어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고 이런 과정은 늘 되풀이돼 왔다. 이 여름이 지나면 서로를 쳐다보며 "너 참 많이 컸구나" 하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