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김일연(시조시인·동화작가)

입력 2000-07-21 14:17:00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해를 입힌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사과는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마지못해 하는 경우는 두 가지. 해를 입은 사람이 강자일 경우 윽박질러서 받아내는 경우와 주위의 상황이 사과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방향으로 몰고 갈 경우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에게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 유감이니 하는 미온적인 말로 하기 싫은 사과를 억지로 하는 것은 후자일 것이다. 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단지 입으로만 하는 유감표명이다.

독일이 나치 징용 유대인 등 150만 명에게 5조원의 배상결정을 내렸다. 독일은 피해자를 적극 정부가 찾아 나선다. 그리고 신고해 달라고 창구를 열어놓는 나라다. 작가 권터 그라스 등 독일 지식인들은 "배상 기금 마련을 위해 전 국민이 20 마르크씩을 기부하는 모금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반성하는 나라는 아름답다"이 말은 최근 가진 유대인 추모행사에서 프랑스의 블랑숑 전문교육청장이 한 말이라고 한다.

일본은 1백만 명 이상의 조선인들을 징용과 징병으로 끌어가고 10~20만 명의 조선 여성을 성의 노리개로 삼고 쓸모 없어지면 청산가리를 먹여 몰살시키곤 했다. 얼마나 야비한 방법으로 우리의 숨통을 조였던가. 식민사관과 함께 만연한 부정부패, 눈치보기, 속이기, 기회주의…. 이 모든 고질병들도 그 많은 부분이 일제 잔재가 우리 사회에 드리워놓은 그늘들일 것이다.

나는 일본을 선진국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으스대도 프랑스가 곁눈을 주지 않는 것은 문화국민으로 산다는 자부심이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에서 막강한 부자 나라이기에 내게는 일본이 사람 구실을 더욱 못하는 좀팽이처럼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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