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이태원'서 눈 흘기고…

입력 2000-07-12 14:31:00

"서울 이태원에선 눈을 부릅뜨고 오키나와에선 설설 긴다" 요즘 한국과 일본에 각각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행태를 지적한 말이다. 지난 3일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의 여중생 성추행 사건에 이어 8일에는 미 공군 사병의 뺑소니 차 사건까지 겹치자 일본내 반미 여론이 폭발했던 것.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토머스폴리 주일 미국대사가 일본 외상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측은 극히 이례적으로 클린턴 대통령이 미군 비행에 분노하는 오키나와 주민들과 대화를 가질 예정이라고 발표하는 등 최상의 예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측의 저자세는 주한 미군의 고답적인 자세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라고나 해야 옳을 듯하다. 얼마전 발생한 미군무원의 초등생 성추행 사건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국측은 범죄 행위에 대한 사죄는 커녕 잘못된 보도를 문제삼겠다고 되레 으름장 놓는 적반하장의 모습이었다. 그외에도 이태원 여종업원 살해사건 등 연평균 770여건이나 발생하는 각종 범죄에서 미국의 오만한 자세가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과연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맹방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대두되고 있는 요즘이다. 오는 8월2일 시작되는 SOFA(한미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 8차 협상을 앞두고 제시된 미국의 협상안이 기가막힌다. 미국측이 제시한 협상안의 골자는 중범죄자의 신병인도 시기를 지금의 '형이 확정될 때'에서 '기소 시점'으로 개정하는 대신 경범죄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아예 포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중범죄의 경우도 피의자 권리가 침해 당했다고 판단되면 주한 미군사령관이 신병인도를 요구할 수 있고 한국측이 불응하면 협정 관련 규정의 효력정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그동안 한국측이 주장해온 환경과 노무, 검역 등은 아예 외면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사법 주권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 미국측 협상안의 요지다. 어찌 일본과 한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이처럼 다를 수 있는가. 미국은 여전히 1945년 한반도에 진주할 때처럼 '점령군'의 자만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본의 오키나와 사람들이 지난 10년간 미군 비행을 감시하고 꼬장꼬장하게 따져 사과를 받아낸 결과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아내게 됐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찬석 논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