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상장부풀리기

입력 2000-07-11 15:20:00

그리스 신(神)들의 거주지인 올림푸스에 한 심술궂은 여신이 있었다. 이 여신은 황금사과 하나를 내놓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친다고 선언했다. 주신(主神) 제우스의 아내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수상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신들은 고심 끝에 골치아픈 심사를 인간인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겼다. 천하제일의 미녀를 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에 넘어간 파리스는 그녀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 상(賞)은 트로이가 멸망하는 화근을 불렀다.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절세미녀 헬레네를 인도했지만 도시국가의 왕인 그녀의 남편은 분기탱천해 형 아가멤논을 맹주로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 트로이로 쳐들어갔다. 10년이 넘은 전쟁은 지장 오디세우스가 짜낸 '트로이의 목마' 계책으로 막이 내렸다. 이같이 신들마저 상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인간 세상에는 상을 둘러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래서 무상무벌(無賞無罰)이라는 말도 나온다. 드가는 어떤 화가가 자기 제자의 그림을 자랑하자 독설을 퍼부었다. '활을 쏘는 사냥꾼'이라는 작품을 보이면서 '참 잘 겨누고 있지요'라고 말하자 '그래 상을 잘 겨누고 있군'이라고 쏘아붙인 일화는 유명하다.

대학 입시에 학교장 추천제와 특기.적성을 우대하는 특별전형이 확대되면서 '상장 부풀리기' 경쟁이 치열한 모양이다. 상장 부풀리기용 경시대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어느 고교에서는 '선행상' 후보자를 추천한 학생에게 '칭찬상'을 주자 서로 짜고 '상 나눠 타기'까지 성행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경시대회를 싸고 드센 치맛바람도 일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상을 줌으로써 골고루 칭찬의 기회를 주는 것은 나무랄 바 아니다. 하지만 입시를 겨냥해 상장이 남발되고, 목적이나 객관성이 불분명한 경시대회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 문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급기야 대학들이 수준 이하의 상은 인정하지 않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혼란이 불가피할지 모른다. 일선 고교는 물론 사교육 시장과 학부모들의 양식과 자제가 요구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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