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된 지난 1일, 포항시 우창동 노인정에 작은 베낭 하나를 둘러맨 젊은이 한사람이 찾아왔다. 젊은이는 "할배, 저 왔심더"하면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자 노인들 역시 "그래, 니 왔나. 많이 기다렸데이"하면서 이 젊은이를 반갑게 맞았다.
포항제철소 선재부 직원 윤조영(40)씨. 노인들에게는 이름도 성도 없이 그저 '이발사'로 통하는 윤씨는 벌써 5년째 기계면, 연일읍, 우창동 노인정을 돌며 이발봉사를 하고 있다.
"노소 가릴것 없이 이발을 하면 기분 좋아지는 건 당연한거 아녀? 그런데 이 젊은이가 매달 한번씩 와서 머리를 단장해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교대 근무자인 윤씨는 이날도 오전6시에 퇴근해 잠시 눈을 붙인뒤 오후1시쯤 노인정에 도착했다. 1시간여만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 10여명의 머리를 깔끔하게 단장했다.
"몸은 고단하지만 이곳을 다녀가면 마음은 그렇게 가뿐해질 수가 없어요. 저를 보고 반가워하는 노인들을 보면 고향(경북 상주)에 계신 부모님들을 뵙는것 같아 제 마음도 푸근해집니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며 기쁜 표정을 짓는 윤씨.
윤씨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96년 초 우연히 무의탁 노인 수용시설을 방문하고부터. 대부분의 노인들이 거동이 불편한데다 경제난으로 한달에 이발 한번 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6개월간의 이용학원 수강을 통해 이용사 면허를 따 직접 노인들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한두번 저러다 말겠지' 했던 노인들도 한달에 한번씩 잊지않고 노인정을 찾아 머리를 손질해주는 윤씨를 보고 이제는 '멀리있는 자식들보다 더 낫다'며 그가 올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한번 '출장'을 나가면 20명 이상의 '손님'을 받는 것이 보통. 1년에 1천명 가량 노인들의 머리를 손질한다는 윤씨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때 "쉬는 날 어디 할일이 없어서 그런 곳엘…"하면서 소풍이나 가자고 조르던 아내(40)와 초등학생인 두 아들도 지난해부터는 가끔씩 동행해주자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고맙다, 잘 가그래이. 다음에는 언제 올끼고"라며 인사하는 이석우(67)씨 등 노인들에게 윤씨는 "다음달에 연락드리고 오겠심더"하며 노인정을 뒤로했다.
포항·朴靖出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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