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 만남 연출자는 미사일"

입력 2000-06-17 00:00:00

단순히 남북한의 양자적 이유 때문에만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중요한 국제적 역학 관계가 작용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NMD(국가 미사일 방어체제) 추진을 무산시키기 위해 북한으로 하여금 정상회담을 하도록 지원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NMD는 이들 나라가 결사코 막으려는 것이고,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NMD 추진 이유로 내세우고 있어, "북한이 위험한 나라가 아니다"는 확신만 세계에 심어줄 수 있다면 NMD 추진의 근거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 언론은 미국의 NMD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이 잇따라 평양에 대표단을 파견했었으며, 그 와중에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사실을 공표했다고 보도해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것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달 19일 중국을 거쳐 북한을 방문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러시아 지도자의 북한 방문은 구 소련시대까지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방북 때 푸틴은 북한으로부터 핵 및 미사일 개발 중단 약속을 받아낸 뒤 이틀 뒤의 일본 오키나와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 중국 등과 힘을 합쳐 미국의 NMD계획 중단을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군사 전략적 및 국제 정치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는 미국으로 꼽힌다. NMD 구축의 논리적 바탕에 대한 회의가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더우기 북한이 핵 및 미사일 개발 포기를 선언하고, 한반도에 실질적 평화가 정착될 경우,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은 커다란 시련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러시아.중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조차 NMD가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미국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 내에서도 NMD 비판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미.일이 추진 중인 동북아 TMD(전역 미사일 방어체제)계획에 대만이 포함돼 있어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던 중국으로서는 NMD와 TMD를 동시에 저지할수 있는 명분을 얻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NMD는 적의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려는 방공망이고, TMD는 미국의 우방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지키려는 계획이다.

이같은 국제적 상황 때문에, 남북 화해를 적극 추진하되 세계 정세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신기욱(한반도문제 전문가) 미국 UCLA 교수는 "한국정부는 정상회담 성공에만 취해 있지 말고 냉정한 국제 현실을 명확히 인식, 미군 철수와 NMD문제 등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북 정상회담 때문에 미뤄졌던 북미 미사일 회담도 오는 28일 재개될 예정이다.

石珉기자 sukmin@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