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허탈한 벼락부자

입력 2000-06-10 00:00:00

'웃고 우는 인생'이라더니 어느 30대 벤처사업가의 성공담에 얽힌 얘기는 한편의 드라마 같다. IMF의 위기가 숙지근해지면서 불기 시작한 벤처열풍에 이 30대 남자도 다니던 증권회사를 뛰쳐나와 '홀로서기'를 해보겠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그게 그리 쉬운게 아니었다. 퇴직금으로 대충 부채청산을 끝내놓고 남은건 은행빚으로 얻은 아파트, 중고 승용차 1대와 4천만원이 전부였다. 이리 저리 밤낮없이 돈이 된다면 물불을 안가리고 뛰었지만 1년만에 거의 알거지 신세가 됐다.

큰아이의 미술학원 학원비 6만원이 없다는 아내의 울먹임에 번쩍 정신이 들어 택시라도 몰 생각까지 했다. 그 무렵 아버지의 회사도 쓰러졌고 그 화병으로 유명을 달리한데다 6개월후 어머니마저 눈을 감았다. 절망으로 술독에 빠져 살면서도 사채업 심부름으로 겨우 2억원을 챙겼다. 그때 동료들이 벤처사업에 투자해 보라는 권고에 못이긴 채 1천만~2천만원씩 투자를 한게 억대로 불어났다. 한번 뜨기 시작한 주식은 몇십배로 급등하는 건 눈깜짝할 사이더라는 것.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모인 재산액이 대충 100억원. '대박'이 터진 그 행복도 잠시일뿐 연일 룸살롱에다 골프장을 헤매는 사이 아내와의 싸움이 시작되면서 불행은 이미 싹터왔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아내는 가정부를 두고 몇십만원짜리 점심을 먹고 나다니기 일쑤이고 비싼 게임기를 사줘도 시큰둥한 아이들은 부촌(富村)습성에 이미 젖어 급변한게 역력했다.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들리고 동생내외는 사업자금 안대준다고 거의 원수지간이 돼 버렸다. 그의 외양은 '벼락부자'이지만 심한 고민에 빠져 정신과의사를 찾아다니며 불면증과 우울증 치료를 하고 있다. "지금 난 이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습니다" 그가 던진 말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전도양양한 30대의 법학석사가 10만달러의 빚을 얻어 미국서 벤처사업을 하다 파산, 귀국한지 얼마안돼 자살했다고 한다. 벤처에 성공한 30대의 씁쓸한 독백이 이 자살한 유학생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사람은 제길이 있고 그릇이 있다'는 옛말을 절감할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두 사연은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지를 은연중 웅변하고 있잖은가 싶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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