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스트레스

입력 2000-06-07 14:00:00

생후 23개월 된 민지가 요즘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다 숨이 넘어갈듯 꺽꺽 울어 엄마 아빠의 애간장을 태운다. 약한 몸에 밥도 잘 안 먹으려 해,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던 엄마 오미경(30·대구시 평리동)씨도 드디어 병원을 찾았다.

잘 놀고 잘 먹고 이쁘기만 하던 민지가 이렇게 변한 건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갑작스레 엄마와 떨어져야 하게 됐기 때문. "이제 애가 어느정도 커서 어린이집에 보내도 될 줄 알았지요. 오전 3시간 정도 운동하는 동안만 아이를 떼 놨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없어졌다고 마음이 많이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다섯살인 하늘이는 유치원에 갈 때마다 엄마와 전쟁을 치르다시피 한다. 차츰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억지로 떼어 보내지만, 유치원에서 하늘이는 선생님 얼굴도 못 쳐다보고 선생님이 조금만 큰소리를 쳐도 화들짝 놀라며 울음을 멈출줄 모른다. 병원에서 진단한 하늘이의 문제는 바로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 유치원 가기 전 잠시 다닌 학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유치원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든 것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스트레스는 흔히 어른들이 느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을 요인은 더 많다. 성장과정에 있기 때문에 유치원·학원·초등학교 등 새로운 변화에 계속 적응해야 하고, 어른들로부터도 잘잘못을 평가 받아야 하기 때문.

게다가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스트레스를 적절히 표출하지 못한다. 때문에 부모가 제때 알아차려 해결해 주지 못하고 방치하면, 장기화돼 단순한 스트레스 차원을 넘어 우울증, 불안신경증 등으로 악화될 위험성이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얼마나 겪고 있을까? 박형배 교수(영남대 의료원 정신과)는 어린이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는 타고난 성격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애살 많고 모든 것을 잘 하려는 아이, 지나치게 남을 생각하는 아이, 신경질적이고 참을성이 부족하며 감정적인 아이, 수줍음 많고 산만하며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느낀다는 것.

박 교수가 지목하는 또하나의 원인은 부모가 아이의 성장 단계와 욕구에 맞춰 적절히 대해주지 못하는 것. 낯가림이 심할 때인 생후 6~8개월의 아이를 낯선 곳으로 자주 데리고 다니면, 4~5살 된 후에도 낯선 사람을 피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언어 발달기, 2~4세의 대소변 훈련기, 4~6세의 또래와 어울리기, 취학 후의 학습 적응 및 또래로부터 인기 얻기 등, 발달 단계에 맞춰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적절한 대응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

아이의 능력을 고려치 않고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하거나 어른스레 행동하기를 강요하는 경우, 학원 수업 등 너무 많은 스케줄로 쉴 틈 없게 만드는 경우, 부모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전가시키는 경우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박 교수는 "아이가 싫다고 하는데도 무시해 버리거나 강요하면 아이의 자율성을 해치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면서, "아이가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방과 후 과외활동이 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이 급한 것도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많이 받은 때문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갑자기 한숨을 쉬고 말이 없어지지는 않았는지, 별 이유 없이 눈물을 글썽이는 일은 없는지… 지금 우리 아이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金英修기자 stella@imaeil.com

---어린이 스트레스 증상

1. 뚜렷한 신체적 이상 없이 두통, 허리 통증, 소화장애, 설사 등을 자주 호소한다.

2. 손발이 차거나 손·발바닥이 땀에 젖고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이 자주 있다.

3.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거나 이를 갈며, 눈을 자주 깜빡거리고 얼굴을 반복적으로 찌푸리는 등의 틱증상을 자주 보인다.

4. 입안이 자주 헐거나 피부 반점, 감기 등에 잘 걸린다.

5. 별 이유없이 안절부절 못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가 많다.

6. 별 이유없이 항상 화 나 있거나 반항적이고 물건을 잘 부순다.

7. 과식하고 너무 단 것을 많이 먹으려고 한다.

8. 집에서 과제를 할 때 집중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9. 어쩔 수 없이 좌절했을 때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10. 별 이유없이 힘이 없어 보이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 들지 않고 힘들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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