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데스크-박정희에 기대는 이유

입력 2000-05-30 15:49:00

"고통의 시작은 집착이란걸, 육신의 고통은 또한 욕심에서 온다는걸 죽음을 목전에 둔 지금에야 알았소…"지난 23일 MBC 인기 드라마 '허준'에서 광해군의 어미인 공빈은 주치의 허준에게 이렇게 토하고 숨을 거두었다.

눈물을 준비하고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선 조금은 감동적인 장면. 기실 드라마의 앞뒤내용을 꿰어맞춰보면 선조임금을 사이에 둔 인빈과 공빈 두 후궁의 질투와 '바람'에 얽힌 한토막 대화이지만 드라마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바람'은 지난 26일 드라마가 아닌 현실 정치판에서도 불었다. 민주당 386의원들과 장관의 광주술판에서 불었고 이어 부산에선 총선연대 스타 장원 교수의 '늦바람'이 몰아쳤다. 고통의 시작은 집착이란걸 그놈의 술땜에 깜박해버린 것이다.장원교수의 늦바람

그러나 386의 술바람은 장원의 태풍앞에 사그라졌다. 먼저 온 파도가 뒤따라온 파도에 밀려 없어지듯 정치판의 악재들은 그렇게 사그라져 부패한 정치, 게으른 정치가 또 그렇게 되풀이 되어간다. 상대방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란 듯이 여(與)는 야, 야(野)는 여의 악수(惡手)를 끊임없이 기다리면서….

바람은 왜 바람인가?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 바람이라면 총선이후 대구에 부는 이 '바람'도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 며칠전 총재단 선거를 앞둔 이회창 대구캠프회의에서 있었던 일. 물망에 오른 후보와 지역의원 5,6명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강재섭(4선)의원이 대구시지부장 시절, 그를 깍듯이 모시던 모 의원이 얘기도중 강 의원을 "어이, 강의원"하고 호칭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고, 순간 강 의원의 얼굴이 하얘졌다고 한다. 충성경쟁으로 뒷말이 무성한 대구의원들의 시기와 견제,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 '컷'이었다.

바람에 울고 웃는 사람들

대구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 14명(전국구 3명)의 당선 1등공신은 바로 유권자가 몰아준 '바람'이 아니던가. 초선의원들은 제쳐놓고라도, 우선 이해봉 의원은 전경환씨가 바람이 무서워 달아나는 바람에 공차를 탔고, 4전5기의 백승홍 의원도 바람이 아니고서야 남의 지역구에서 어찌 무사했겠는가.

'토니 블레어'라 자칭하며 한때 총재에 도전한다고 수선을 피운 강재섭 의원은 기실 15대 총선에서 반(反)YS바람에 죽다가 살아나, 이번엔 거꾸로 바람덕분에 쉽사리 당선됐다.

이정무씨가 홀수(13.15대 당선)의 사나이 듯 짝수(12.14.16대 당선)의 사나이로 알려진 윤영탁의원 역시 공차탔다는데 이의가 없을터. 그러나 누가 뭐래도 16대 바람의 사나이는 안택수.박종근 두 의원이다. 정당을 옮겨다녀 두번 당선된 사례.15대(자민련당선)땐 반YS, 16대땐 자민련을 이탈, 재빨리 반DJ 바람을 탔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았다면 두사람의 오늘은 없다.

'바람'덕분에 금배지를 단 이 어른들이 지금 모두들 제잘나서 된것처럼 행세를 한다. 영남종금이 내려앉아 저네들을 찍어준 유권자들이 통곡을 해도 '총재앞에 줄서기'로 여념이 없다. 서로가 총재1중대다. 그래야 당직 하나 국회직 하나 챙길 수 있기 때문인가?

민초 고통 뒤로한채 총선 경쟁

그 중에서도 박근혜 의원을 뺀 3명의 ㅂ의원과 1명의 ㅇ의원 등 네분의 충성경쟁은 유권자들에게 보고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씨름선수가 샅바싸움하듯 총재옆에 딱붙어 앉는것부터가 치열한 싸움이다. 자난총선대 이총재가 남구 봉덕시장을 방문했을 때 ㅇ의원은 자기 선거구를 놔두고 총재옆에 하도붙어다녀 정작 남구의 현승일 후보가 찬밥처럼 됐었다는 얘기는 혼자 듣기 아까운 일화.

지금 대구.경북엔 인물이 없다고 한다. 있을리가 없다. 스스로 '토니 블레어'가 되기는 낯간지럽고, 남이 토니 블레어가 되려하면 "웬 블레어?"하고 왕따를 놓는 풍토-역사적 검증이 시작도 되지 않은 박정희신드롬이 왜 선거때마다 튀어나오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편집부국장 姜健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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