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이용우 지음)

입력 2000-05-30 14:04:00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씨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면 매우 재기발랄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우선 든다. 1984년 새해를 맞아 거대 미디어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하는 소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을 조롱하기 위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만든 것이라든지, 부처가 TV속 부처를 쳐다보는 'TV 부처' 등 다양한 작품들이 한결같이 재미있다는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재기발랄함에 덧붙여 동양적 사고의 깊이를 작품속에 불어넣음으로써 독창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잡게 됐다.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이용우 지음, 열음사 펴냄, 320쪽, 1만2천원)은 미술비평가인 저자가 백남준의 삶과 예술을 다룬 책이다. 플럭시스 예술가(표현 과정의 행위를 중요시함)로 출발한 그가 현대문명의 총아인 TV와 비디오에 관심을 돌려 비디오예술가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작품세계의 변천과정, 다른 예술가들과의 예술적 교감 및 관계, 삶의 편린들이 담겨져 있다.

젊은 시절의 백남준은 과격한 행위예술가였다. 60년대초 독일에서 활동한 그는 피아노를 부순다든지, 피가 뚝뚝 흐르는 소머리를 갤러리 입구에 내건다든지, 행위예술을 관람중인 친구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다든지 하는 돌출적 행위로 인해 충격을 주면서 단번에 주목을 끌게 되었다.

60년대 중반 일본에서 TV 기술에 관해 연구를 마친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본격적으로 비디오 예술에 뛰어들게 되었다. 'TV 부처'는 단순하지만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문명을 대비한 예술적 깊이로 높은 평가를 얻었으며 그의 예술적 동지가 된 첼리스트 샬로트 무어만과 함께 'TV 브라' 등 일련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정보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TV를 인간이 참여하는 예술행위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인간화된 TV'의 개념을 제공하는 한편 비디오 화면도 합성기를 통한 이미지 조작 등으로 예술로 승화시키는 독창성을 나타냈다.

그는 이와 함께 예술을 통한 정확한 시대변화의 통찰, 예술의 의미 등에 대해 끊임없이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함으로써 주요한 위치를 더욱 다지게 된다. 그가 한 전시회 캐털로그에서 언급한 "모든 기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기술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예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한다"는 말은 전시회보다 더 주목받은 발언이다. 친구이자 스승격인 존 케이지는 "백남준의 재담을 듣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金知奭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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