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대구에 관한 단상

입력 2000-05-27 14:33:00

촐퇴근길이나 업무차 움직일 때면 가급적 다른 길을 이용하려고 한다. 바뀐 대구의 모습들을 되도록 많이 눈여겨 보고 싶어서이다.

이곳에서 자라 학교, 군복무까지 마친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떠났던 곳, 그동안 길지 않은 기간에 두번 근무했고 이번이 세번째이지만 여기서 살았던 세월만큼이나 떠나 있었던 세월도 길어진 듯하다. 그 기간이 아무리 길다 해도 언제나 대구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저버린 적은 없다. 어쩔 수 없는 대구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에 대해 늘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무언가 정리해 보려고 하니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 온 사람들은 대구를 얼마나 알고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시 내려온 지 한달 남짓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냥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또 그것만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 탓일게다. 누군가 고향이란 그냥 느낌이요,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구의 또다른 이름은

우리나라에는 '예향 광주', '묵향의 도시 전주'와 가티 효성(수원), 예절(예산), 충절(충주), 심지어는 꽃(고양)과 호수(춘천)의 도시에 이르기까지 도시명 앞에 붙이는 명칭들이 많다. 대구는 무어라고 해야 할까. 동경사람은 에돗고, 파리사람은 파리지앵, 뉴욕사람은 뉴요커, 다소 비하적인 뜻이 있긴 하지만 서울내기, 부산자갈치, 인천짠물, 그런데 대구사람은 그런 별칭이라도 있던가.

대구, AD 1세기경 달구벌이라는 부족국가로 형성되었다가 신라로 복속되면서 대구(大丘)가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성현의 이름(고자의 본명:丘)를 지역의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하여 대구(大邱)로 바뀌었다는 곳. 이제는 인구 250만의 영남 중심도시이자 학교가 590개인 교육도시, 2천172개의 섬유관련 공장이 움직이는 섬유도시, 금융기관 점포가 771개인 금융도시, 문화시설이 635개소 있는 문화도시, 사통팔달의 교통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태산준령의 맛이 살아있는 곳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추워 기온의 연교차가 심하다. 그런 지형과 기후를 닮은 탓일까. '마 치아뿌라', '알라 맨치로', '마카 수그리' 같은 투박함이 아직 살아있고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들, 꾸밈이 없고 직선적인가 하면 명분을 중시하고 정의와 의리를 앞세우는 사람들, 보수성 속의 수용성과 보스기질 등…. 한편으론 폐쇄, 오기와 고집, 권위, 성급함 등의 단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삿갓'에 나오는 팔도 인물평처럼 '태산준령'의 맛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대구에도 최근 몇 년간 그 모습들이 확실히 변하고 있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도시가 매우 밝고 생동감있어 보인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고 있을 정도이다. 잘 정비되어 깨끗해진 거리와 녹지공간, 늘어난 수목들, 담장 허물기와 신천의 흐르는 물, 그 위로 치솟는 분수는 그야말로 '벽'을 허물고 미래를 향한 전진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대구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거나 모 신문의 "관광객 대구만 오면 깜깜"같은 기사제목을 대할때면 더욱 우울할 수밖에 없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만큼 그에 수반되는 문제도 많기 마련이다. 횡단보도를 무시한 보행, 공공장소에서의 안하무인격한 큰소리에서부터 동종 업종간 출혈을 자초하는 과당경쟁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거품속에 빠져 있는 곳은 없는지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란 그냥 두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변화는커녕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대구의 상징 '패션이'

그렇다면 누가 해결할 것인가. 그것의 주체는 바로 여기 살고있는 우리들이다.

대구의 상징마크는 팔공산과 낙동강의 이미지를 형상화 하였고 캐릭터는 비천상 문양의 '패션이'이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도록 다같이 노력한다면 우리의 대구는 진정 '살아 움직이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정말 그렇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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