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산림인-9)안동 산림조합 작업 1단장 신현섭씨

입력 2000-05-22 14:16:00

"내손으로 산에 심은 나무가 잘 살아 쭉쭉 자라는 걸 볼 때가 가장 흐뭇합니다. 나무를 심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을 모르지요"

매일 이른 새벽에 출근을 산으로 하는 사람. 일년내내 산림속에 파묻혀 사는 안동산림조합 작업 1단장 신현섭(申鉉燮·46·안동시 도산면)씨는 스물여섯살때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해 올해로 벌써 19년째다.

지난 76년 안동댐이 준공되면서 대대로 살아오던 농토를 물속에 가라않히고 수자원공사 측이 마련한 이주단지로 이사오면서 먹고 살기 위해 나선 나무심기 일이 이젠 온전히 천직(天職)으로 자리잡았다.

그 세월동안 산림청과 경북도산림환경연구소, 안동시 등으로 부터 산림조합이 발주받은 식수사업에 참여해 온 그는 80년대 리기다 소나무와 산오리나무, 아카시아를 주로 심었고 최근 잣나무, 산수유, 고로쇠, 단풍나무, 주목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손을 거쳐 산에 뿌리 박은 나무가 연간 1만7천여그루에 이른다. 거기에다 자신의 산림인생 19년을 곱해 어림잡아 계산하면 무려 30만그루.

때문에 신씨는 지난 20년간 지역 산림행정에 대한 산증인에 다름 아니다. 안동을 중심으로한 경북 북부지역은 물론이고 포항, 상주 등지에 이르기까지 산에 대해서는 토질과 나무 종류 등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휜하게 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에 보이는 산을 보면 나무를 심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르지요. 가장 빠른 성장을 하는 나무가 아카시아인데 저가 심은 것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안동산림조합 사업과장인 조특기(45)씨는 신씨의 나무심기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극찬한다. 도 산림환경연구소와 안동시 산림과 직원들도 신씨가 일을 맡았다 하면 적이 안도한다. 지난 95, 96년 지독한 봄가뭄때 신씨가 안동시 길안면 일대에서 심은 나무가 96%의 활착률을 기록하면서부터 산림 당국자들은 그의 나무 치성(致誠)을 더이상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

한해에 있어 신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토사유출과 산림 황폐지를 나무와 잔디, 억새 등으로 피복하는 사방사업. 잔설이 채 녹기도 전인 이른 봄부터 척박한 황폐지에 묘목 활착이 가능하도록 계단식 단을 만들고 부드러운 흙을 붙인다. 토사유출이 심한 곳은 야면석을 모아 축대를 쌓는다. 이어 억새와 잔디 등을 이용해 수로를 만든 뒤 잔디씨와 속새씨, 아카시아, 싸리나무 씨앗을 경사면에 파종하게 된다. 신씨 손을 거친 황폐지는 첫 비료를 주는 초여름쯤 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녹음으로 뒤덮히게 된다.

신씨가 하는 일은 여기에서 그치질 않는다. 여름 장마철까지 솔잎혹파리 방제를 위해 수간주사 작업에 나선다. 고독성 약품을 쓰는 까닭에 무더운 여름철 습도가 높은 날의 빽빽한 숲속 작업은 단원들이 농약중독까지 일으킬 수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하나 둘 늘어가는 일의 성과를 보면 하루가 짧게만 느껴진다.여름 장마철 동안 잠깐 쉬고는 곧바로 가을철까지 가지치기와 간벌 등 나무 가꾸기사업에 나선 다음 땅이 얼어 작업이 불가능해지면 이듬해 봄철 식목을 준비하는 사방사업이 계속된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산으로 향하는 단원들의 하루 임금은 4만5천원. 자신은 작업단장을 맡고 있어 일당으로 6만5천원을 받지만 일감이 그리 많지 않아 겨울철과 장마철 등 연중 3분의 1을 집에서 놀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 평균 수입은 고작 100여만원 안팎.

"일이 없는 날도 산을 오르지요. 일당을 주지는 않지만 저가 심은 나무가 잘 자라는지 둘러보기 위해 가는거지요. 남들은 일부러 등산도 하지 않습니까. 공기 맑은 산에서 일하는 때문인지 단원들 모두 잔병치레가 전혀 없어요. 모두의 바람이라면 일감이 많았으면 하는 거지요"

고교 3년, 2년, 중학교 2년 등 딸 셋 학비도 만만찮아 신씨의 아내 남명하(39)씨도 마을 공장에 나가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신씨는 어려운 속에서도 월 40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는 부인이 고맙기 그지 없단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서 남편 신씨에게 건네는 부인도 반은 산사람.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남들은 산일을 하다가 절벽이나 척박한 땅에서 외틀어지게 자란 나무를 캐와서 분재를 만들기도 하지만 신씨는 그렇지 않다. 제대로 가꾸지 않아 삐뚤어지게 자란 나무를 집에 두고 왜 좋아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투다. 일심동체, 부인도 제대로 가꿔주지 않아 난장이가 된 분재목을 불쌍하게 여긴다.

"나무는 사람들이 가꾸기 나름이지요. 심기만 하고 버려두면 절대 제대로 자라지 못해요. 가지를 치고 거름과 비료를 주면 펄쩍 뛰는 듯이 자랍니다. 자식 키우는 사람들과 하나도 틀린 게 없이 똑 같아요"

신씨가 나무심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영양 등지에서 나무를 베어내는 산판일을 했다. 일거리가 없어 산판에 따라 다녔지만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그게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단다.

산불의 무서움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산에 오를 때는 아예 성냥과 라이터 등 불씨를 두고 간다. 작업단원들은 신씨가 지난 봄 동해안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는 소화 불량에 걸렸을 만큼 애를 태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꾸 작업단원들의 나이가 많아지는 게 안타까워요. 산림을 가꿀 작업단 후계자가 없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힘든 산일을 하려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농민후계자처럼 영림단 작업단원들도 당국에서 조금만 지원해 준다면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사방공사 현장에서 야면석으로 석축을 쌓는 석공들의 나이는 평균 70∼80살의 노인들. 작업 단원들의 나이도 50∼60세나 된다. 안동댐 수몰민들이 모여 사는 안동시 도산면 서부이주단지내 주민들이 지금까지 이렇다할 별다른 생업이 없어 산일에 나서고 있지만 머지않아 일을 할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신씨는 걱정이다. 강산이 두번이나 바뀔 동안 나무와 같이 살아 온 신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산을 향해 오를 채비하는 신씨는 언젠가는 자기 산을 마련해 갖가지 나무를 심어 광릉 수목원처럼 가꿔 보는 꿈을 꾼다.

-안동·權東純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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