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면 뭐든지 척척 맥가이버 선생님

입력 2000-05-15 15:41:00

책걸상 수리, 다친 학생 치료, 결식학생 돕기, 학부모 체육교실…영천 금호초교 '맥가이버 선생님' 허동현(49) 교사가 학교에서 하는 일이다. 근무복은 등산복 조끼에 체육복 바지. 공식행사에만 정장을 입을 뿐 학교에서는 물론 외출할 때도 그대로다.

허교사의 조끼 네 주머니에는 드라이버와 손망치 등 각종 공구와 구급약품이 가득하다. 체육과목을 맡고 있지만 학교 내 온갖 비품과 기자재 수리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으며 다친 학생 치료에도 솜씨가 있다. 어떤 물건이든 손만 대면 뚝딱뚝딱 고쳐내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여기서 생겼다. 마을에 있는 일거리도 기회가 닿으면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영락 없는 촌 아저씨, 시골 학교 기능직 직원같은 그가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근정포장이라는 큰 상을 받는다. 교직생활 25년만에 첫 수상이다. 그동안 스승의 날을 비롯해 교사를 포상하는 계기가 있을 때마다 허교사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본인이 극구 고사,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했다. 이번 수상도 본인 몰래 이루어졌다. 공적조서를 쓰는 데는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 마을 주민들까지 나섰다.

석가탄신일인 11일에도 그는 어김없이 출근했다. 곧 학생들의 야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97년3월 금호초교로 부임한 그는 그해 말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학생 생활지도를 자청하고 나섰다. "처음 왔을 때 400명이던 학생이 이듬해 700명을 넘었습니다. 환란에 쫓겨 시골로 들어온 도시 아이들이었지요.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점심을 수돗물로 채우는 아이도 눈에 띄었어요"

이때부터 그는 아이들과 함께 목욕을 다니고 떡볶기도 사먹었다. 굶는 아이들 밥을 사 주고 용돈을 주고 학교 급식비도 보탰다. "저도 어릴때 굶는 날이 많을 정도로 어렵게 자랐습니다. 경험자로서,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줬으면 하는 바램 뿐입니다"

수상소감을 묻자 허교사는 아직도 주변에 고통받는 가정과 학생이 적지 않고, 자신보다 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직자가 수없이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교사들에게 상을 주고 칭찬하는 일보다 극소수의 잘못으로 전체 교사를 싸잡아 매도하는 사회 분위기가 하루 빨리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천.徐鍾一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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