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신사태 사재출연 신경전

입력 2000-04-29 00:00:00

28일 정부 안팎에서 비공식적으로나마 정주영 명예회장 등 총수 일가의 사재출연 필요성이 대두되자 현대가 돌연 숨을 죽였다.

이번 현대투신 사태가 예상밖으로 총수의 사재출연으로 비화된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당장의 공식적 맞대응이 오히려 화(禍)를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현대 내부적으론 정부 주변에서 사재출연 요구 가능성이 제기된 배경에 잔뜩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다. 현대투신 사태가 직접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최근 전방위적 재벌압박을 가하는 정부의 행보를 감안할 때 모종의 '메시지'일 가능성이 있다는게 현대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정부 안팎서 흘러나오는 '사재출연' 요구=정부 고위관계자는 28일 "현대의 주가폭락 사태는 총수일가의 경영행태에 대한 국내외 신뢰도 실추가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이들이 몸을 던지는 자세로 위기극복에 나서야하며 대주주의 증자가 우선이지만 부족할 경우 총수일가의 사재출자를 통한 현대투신의 부실해소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금감원 등 정부측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사재출연요구는 정부 주변에서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

특히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경제단체장과의 간담회에 앞서 한 발언이 주목을 끈다. 이 장관은 "나는 (사재출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현대가 현명히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정부가 굳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현대가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재계주변에서는 이건희 삼성회장이 삼성자동차 처리와 관련해 2조4천억원상당의 삼성생명 주식을 사재출연할 때와 비슷한 양상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현대의 입장=현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정부의 정확한 진의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현대는 '사재출연 불가'라는 입장이다. 대응논리는 있다. 우선 현대투신 사태는 재벌총수 사재출연의 전범인 삼성자동차와는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 삼성차 처리는 그야말로 '투자에 실패한 경영주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만 현대투신 부실사태는 89년 12.12 증시부양조치, 한남투신 인수과 대우채 손실 등 외부요인에 기인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현정부 출범직후인 98년부터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개인예금또는 부동산을 거의 모두 처분하고 책임경영 구현차원에서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출자형태로 사재를 출연해 왔기 때문에 이를 현대투신 부실처리에 활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논리다.

◇총수 사재 얼마나 될까=현대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정확한 사재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3월15일 기준으로 볼 때 정 명예회장이 2천478만주(3천999억원), 정몽구 회장 2천185만주(1천560억원), 정몽헌 3천285만주(3천233억원)이고 여기에 비상장 회사 주식과 기타 재산을 합칠 경우 각 회장마다 각각 2조∼4조원에 이를 것이란 추정이 나오고 있다.

◇향후 전망=정부가 현대에 사재출연을 요구한 적이 없고 현대측도 사재출연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대투신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사재출연 문제는 계속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재출연 요구 발언이 정부가구상하고 있는 재벌개혁이라는 '큰 그림'에서 나왔을 것이란 관측이 높다.

현대로서도 당장 법적 책임은 없더라도 정상화에 조금이라고 총수가 기여해야한다는 당위성을 감안할 때 최소한의 '성의'표시라도 해야할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실규모가 수조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총수들이 출자참여 형태의 사재출연이라는 방법외에 별다른 해법이 없다는 시각이 많다. 물론 현대는 현대투신이 경영정상화에 이르면 대주주 보유 주식을 시가보다 싼 가격으로 일반에게 공모함으로써 정상화에 따른 대주주의 이익을 사회환원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해 정부가 이같은 현대의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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