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향토출신 재일동포들(27)

입력 2000-04-24 14:14:00

이역땅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무(無)에서 출발해 일본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지위로 발돋움한 재일동포 1세들은 이제 2세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현역에서 내려와 무대뒤로 사라지고있다.

99년 7월7일 본지 창간 53주년 특집 기획시리즈로 시작했던 '차별을 딛고 설움을 넘어' 성공한 향토출신 재일동포들 연재물은 이제 27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제 그들의 얘기를 채록하지 않으면 일제 강점에 의한 동포들의 고통이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감도 이번 기획 연재 이유중의 하나이다.

또한 이국땅에서 오랜 세월을 살며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의지와 질곡의 한시대에 대한 그들의 자서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재일동포사회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재가 시작되던 즈음에는 IMF 경제위기의 충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있는 사회적 침체 분위기속에 이국땅에서도 어려움과 절망을 딛고 일어선 성공 사례들을 소개하려 했던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재일동포들이 살아온 감춰진 세상속으로 떠났던 기자의 여행담을 통해 의욕 상실의 보통사람들에게 용기의 화두를 제시하려 했던 부분도 있다.

해방전 일제에게 당한 민족의 수난과 함께 일본땅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이 눈물로 털어놓은 억압 민족의 한은 며칠을 들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일본서 태어난 재일동포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본적은 있으나 고향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일동포의 다수를 차지하는 경상도 출신들은 일찍부터 향우회 등의 형식으로 고향사람들끼리 모여 정담을 나누고 서로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자리를 자주 가져왔다. 이 모임은 해를 거듭하는 가운데 조직화돼 재일본 경북도민회라는 단체로 성장해 동향인들을 위한 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각계에서 훌륭하게 성공했고 또한 동포들을 위한 삶을 살아온 향토출신 인사들의 인물사를 기록했다. 그들의 개인 역사 역시 후세 동포들에게 전해야 할 재일동포사였기 때문이다.

귀화 압력을 뿌리치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변호사가 된 김경득 변호사(군위군). 70만 모든 재일동포가 일본국적으로 바꾼다해도 나만은 끝까지 한국인으로 남겠다는 마론그룹의 김복남 사장(청도군). 맨손으로 거부의 꿈을 이룬 신한은행 이희건 이사장(경산군). 병마에 시달리는 동포들을 위해 인술을 베풀고 있는 교토 병원의 김재하 원장(상주군)과 가와사키 중앙병원의 이태영 원장(선산군). 고향을 위한 투자에 노력한 연전개발의 전종상 회장(구미시). 하나같이 '나는 죽어도 한국인으로 살겠다'며 차별을 딛고 설움을 넘어 성공한 표상이었다.

여성들의 활동도 오늘날 동포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창기 재일동포 여성운동을 주도해 온 오기문여사. 그는 90에 가까운 나이에도 사재를 털어 경북 고령에 사할린 귀국자들을 위한 대창양로원을 설립해 노인들이 여생을 보내도록 했다. 오여사는 최근 그의 파란많은 생을 기록한 자선전을 출판하기도 했다. 한인차별을 국제사회에까지 공론화시키면서 차별철폐에 앞장서온 재일대한부인회 배순희 고문(성주군). 지방 참정권 획득을 위해 앞장서온 전 부인회 김정자 중앙회장(고령군). 해방후 한국의 고유문화를 일본사회에 자랑해온 학예연구원 김혜경 박사(울진군). 이러한 여성들의 삶도 동포들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었다동포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학술적인 연구에 힘을 기울여 온 한민족문제연구소 박병윤 소장(의성군). 한국역사에 대한 문화강좌를 계속, 일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다나카스틸의 서흥찬 회장(대구시)의 삶도 나보다는 동포를 위한 것이었다.일본 연예계에서 '청하가는 길'을 히트하며 망향의 한을 노래해 동포들의 심금을 울린 가수 박영일씨(영일군). 고향을 그리는 동향인들을 모아 경북도민회의 기틀을 마련한 천수명 회장(영양군). 현재 경북도민회 회장으로 활동중인 마스타상사의 이진우 사장(영일군). 소싸움 행사를 위해 많은 희사를 계속해온 유고그룹 김종달 회장(청도군). 유미리에 이어 아쿠다가와 문학상을 노리는 소설가 박찬문씨(문경군). 그늘에 가린 동포 서민들의 삶을 보호해온 극동회 조규화 회장(의성군) 등 이들의 인생 역정도 후세들의 삶의 규범으로써 큰 힘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특히 마론그룹의 김복남 사장. 아오야마 건설의 이충정 사장(의성군). 일본과 김치전쟁을 벌이고 있는 오영석 사장(대구시). 해방후에 태어난 재일 2세를 비롯 신한국인으로 불리는 이들의 앞날은 동포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다.

그밖에도 더욱 훌륭한 동포들이 있으나 겸손함으로 자랑하길 마다했고 또한 이미 작고했거나 노환에 들어있는 분들도 많아 이들을 모두 다 소개치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은 아시아 대륙 동쪽으로 남북 3천㎞에 걸쳐 길게 널어져 있는 섬나라이다. 취재를 위해 일본 열도를 왕래했으므로 대충 5천㎞정도는 뛴 셈이다. 취재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은 일본 현지를 포함해 100명이 족히 넘는다.

일본 남쪽 규슈(九州)에서부터 북쪽 아오모리(靑森)까지 취재 여정을 계속하면서 그들의 증언속에는 귀중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간탐험이라는 호기심에 이끌려 대상자들을 만났던 것 같다.

-朴淳國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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